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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세진 경찰, 문무일의 반격 카드…檢인사에 답 있다

이동현
이동현 기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6/21 20:35

수사권 조정 '후반전' 준비하는 검찰의 전략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저라도 책임지겠다"
2011년 7월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대변인실을 통해 사퇴의 변을 전했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경찰의 수사에 대한 검사의 지휘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반발한 것이다. 당초 검찰과 경찰은 국무총리실 주재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법무부령에 담기로 합의했는데 이 '약속'이 깨졌다며 반발한 것이다.

2011년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 대검청사를 떠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1일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 형태로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다. 2011년엔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합의의 주체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석해 각자 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검찰 권력의 분산과 견제가 첫발을 뗀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검찰 안팎에선 "문무일 검찰총장이 중대 결심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경찰 수사를 검찰이 통제하고 지휘하는 것은 인권 보호를 위한 법 정신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검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며 "검찰총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분위기는 7년 전과 달랐다. 일부 언론에서 '검찰총장의 중대결심' 예측이 나왔지만 "검찰 내부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란 반응이 나왔다. 한 대검 간부는 "수사권 조정 내용이 법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검찰총장이 직(職)을 던져 제동을 걸 수 있다면 검찰총장 사퇴 카드가 유효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집단 반발'이나 '사퇴' 카드 고려는 없었단 것이다.

다시 시간을 7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검찰의 전략을 대략적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2011년 11월 국무총리실은 '검사의 사법경찰 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 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만들어 입법예고했다. 넉 달 전 김준규 검찰총장이 '약속을 어겼다'며 사퇴의 발단이 됐던 그 대통령령이다. 총리실 조정안에는 논란이 됐던 경찰의 내사 권한을 인정하되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사건의 경우 내사를 자체 종결했더라도 사후적으로 검찰에 보고해 통제받게 하는 방안이 담겼다. 압수수색이나 긴급체포 등 강제수사의 경우 단계별로 검사의 지휘를 받게 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이른바 '정중동' 전략으로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의 입장을 지켜냈다. 오종택 기자


이를 두고 당시 검찰 안팎에선 '검찰의 판정승'이란 평가가 나왔다. 4개월만의 역전을 이뤄낸 건 김 총장의 뒤를 이은 '기획통'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과 정인창 당시 대검 기조부장(현 변호사)였다. 한 총장은 이른바 '정중동(靜中動)' 전략을 구사했다. 실무진에 "국민에게 기관 간 갈등으로 비치지 않게 하라"면서도 "핵심 사안에 대해선 법 논리로 승부해 절대 양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후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상당부분보장됐지만 검사의 수사지휘라는 핵심 구조는 비교적 유지됐다. 무분별한 경찰의 내사 우려도 불식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 내부에선 한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육참골단(肉斬骨斷)' 전술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21일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발표되자 검찰 내부에선 "비교적 선방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무부가 수사권 조정 협의를 주도하면서 '검찰 패싱' 논란이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단 검찰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는 의미였다. 64년 만에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의 수사종결권이 보장됐지만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 장치도 상당부분 반영됐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강조했던 자치경찰제와의 연계 부분도 담겼다.

 21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서명식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이 합의문에 서명하는 모습을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이 지켜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문 총장과 참모들은 7년 전 한상대 총장 때처럼 '정중동'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축구로 치면 아직 후반전 45분이 풀로 남아있다. 형사소송법 개정, 공수처 추진, 다시 재점화할 수 있는 개헌 논의 등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얼마든지 '만회골'을 넣을 기회가 있다. 누가 수사를 하는지, 검·경이 종속관계가 돼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법 논리와 체계에 맞는 수사권 구조를 만들자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에도 문 총장의 전략이 담겨있다. 이번 인사의 최대 파격으로 불린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검찰국장 승진 발령에는 문 총장의 목소리가 반영됐다고 한다. 검찰 안팎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윤대진 검찰국장 카드는 문 총장이 먼저 제시했다는 게 정설이다. 인사 협의 과정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문 총장이 윤대진 차장을 검찰국장에 앉힐 것을 제안했고, 박 장관도 '나쁘지 않은 카드'라며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이 청와대에 보낸 첫 번째 인사안에서부터 윤대진 검찰국장 안이 포함됐다고 한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의 향후 전략이 주효할지 관심이 쏠린다. [중앙포토]

윤대진 신임 검찰국장은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직속상관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윤 신임 국장은 청와대뿐 아니라 여당과 국회에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향후 수사권 조정을 비롯한 검찰 관련 입법·입안 과정에서 운신의 폭이 넓다는 게 평판이 많다.

주(駐) 제네바 법무협력관, 국회 전문위원 등을 지내 정·관계에 두루 친분이 있는 강남일 신임 법무부 기조실장도 비슷한 포석이다. 강 실장은 당초 문 총장이 대검 검사장급 보직으로 원했지만 박상기 장관의 요청으로 법무부에 입성했다. 법무부 탈 검찰화로 검찰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활동 반경'이 넓은 두 검사장이 법무부에 포진한 게 검찰로서는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조남관 신임 대검 과학수사부장도 예산 등 대정부·대국회 업무에 초점을 맞춘 인사 포석이다.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으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1과장으로 활동해 현 청와대나 정부·여당과 관계가 원만한 검찰 인사로 꼽힌다. 수사권 조정 실무를 맡을 대검 기조부장에는 문찬석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임명됐다. '다스 횡령 의혹 관련 고발사건 수사팀'을 이끌며 이명박 전 대통령 기소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총장의 핵심 참모'인 기조부장으로 문 총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향후 수사권 조정 입법 과정을 염두엔 둔 인사는 구본선 신임 대검 형사부장이다. 수사권 조정 실무를 연구한 대검 정책기획과장 출신이지만 앞으로 경찰과의 수사권 관련 분쟁이나 협의를 감안하면 형사부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인사와 '정중동' 전략으로 수사권 조정 후반전을 준비하는 검찰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과정에서 이번에 지켜 낸 검찰의 특수수사 범위가 훨씬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개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 폐기된 정부 개헌안에 담겼던 검찰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가 다시 이뤄질 수도 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문무일 검찰총장도 과거 검찰의 원죄가 검찰 권한 축소의 원인임을 잘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이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도 잘 안다. 조직 이기주의보단 법 논리에 맞게 사법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에게도 이득이라는 게 문 총장의 의중"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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