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뉴스 라운지] 김종필 묘비명

묘비명은 고인의 삶과 가치관을 압축해 묘비에 새긴 문구를 말한다. 보통은 잘 아는 지인이 짓지만 죽기 전 스스로 써 놓는 경우도 많다. 묘비명이 고인의 삶의 궤적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돈과 권력에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자화자찬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김종필 전 총리가 별세하면서 직접 써놓았다는 묘비명이 화제다.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고인이었던 만큼 한자성어나 한문투가 많다. 사무사(思無邪-삿된 생각이 품지 않음), 무항산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평온한 마음도 없음), 연구십이지 팔십구비(年九十而知 八十九非-나이 90이 되니 지난 89년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겠더라), 소이부답(笑而不答-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 등이 그것이다.

고인은 만년에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며 인생무상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쓴 묘지명 문구들을 보면 스스로는 한 평생 소신껏 잘 살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특히 눈에 띄는 구절이 무항산무항심이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말인데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된 뒤라야 평온한 마음도 있다'는 뜻이다.

고인은 젊은 시절 좌익 전력 때문에 한 때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하고 떠났지만 고인이 평생 치국(治國)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무항산무항심이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인간의 의식과 사상, 이념, 정치 등 그 사회의 상부구조는 경제적 토대라는 하부구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마르크스 유물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장군과 함께 5·16 군사 쿠데타의 한 주역이었던 고인은 실제로 무항산무항심의 신념을 실천하며 대한민국 경제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극과 극의 평가까지 받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