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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사려 막노동까지 … 독일 격파 선봉장 ‘킹영권’

박린
박린 기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6/28 08:09

독일전 결승골 중앙수비수 김영권
어려운 가정형편 탓 축구 그만둘 뻔
지난해 말실수 사건으로 힘든 시간
‘자동문’ 조롱 속에 대표팀서도 밀려

이탈리아 리피 감독이 아낀 애제자
몸던진 수비, 극적 결승골로 대반전


한국-독일전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이 코너킥 한 공이 문전에서 혼전 중 독일 수비수 몸에 맞고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지자 김영권이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피해 골을 넣고 있다. 선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으나 비디오 판독(VAR) 결과 골로 인정됐다. [임현동 기자]


축구인생이 김영권(28·광저우 헝다)만큼 극적인 선수가 또 있을까.

한국 축구대표팀 중앙수비수 김영권은 28일(한국시각)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의 공세를 멈춰 세웠고, 결정적인 일격까지 가했다. 육탄방어로 상대 공격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까지 터트렸다. 한국은 F조 3위(1승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김영권은 ‘킹영권’‘빛영권’이라는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김영권에게 5년짜리 ‘까방권’(까임방지권의 준말로 잘못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권리)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조별리그 3차전 가봉과의 경기에 출전했던 김영권.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영권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중학교(전주 해성중) 시절 아버지(김성태) 사업이 실패하면서 축구를 관둘 뻔했다. 김영권은 “축구를 포기할 수 없다”며 전주에 홀로 남았다. 나머지 가족과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한 아버지는 빚을 내 산 트럭으로 식재료를 납품 일을 했지만, 가정형편은 더 나빠졌다. 김성태씨는 “트럭째 한강에 빠져버릴까 생각마저 했다. 영권이에게 ‘(형편이 안되니) 축구를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한 뒤 서로 안고 펑펑 울었다”며 “하루는 영권이로부터 ‘축구화를 사기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축구를 계속하게 했고, 나 역시 아들을 보며 일어섰다”고 말했다.

김영권은 가족을 생각하며 남들 쉴 때도 연습을 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왼발잡이인데도 양발을 잘 쓰게 됐다. 또 풋살 국가대표를 병행하면서 축구를 향한 꿈을 이어갔다. 연령별 대표팀에 뽑힌 김영권은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진출과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2006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은 광저우 헝다 시절 자신이 지도한 김영권을 양아들처럼 아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 당시 실점한 뒤 그라운드에 엎드려 절규하던 김영권(왼쪽). [중앙포토]


김영권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했다. 한국은 당시 알제리에 2-4로 참패하는 등 1무2패로 탈락했는데, 당시 상대 공격수에게 너무 쉽게 뚫린다는 이유로 ‘자동문’이란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절치부심한 김영권은 2015 아시안컵 준우승에 일조했고, 같은 해 동아시안컵에선 주장 완장을 차고 우승을 이끌었다. 또 광저우 헝다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이뤄냈다. 그해 그는 손흥민(토트넘) 등을 제치고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잉글랜드 에버턴 이적설까지 나왔다.


지난해 8월31일 이란과의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 나섰던 김영권(오른쪽). [사진 일간스포츠]


직진만 할 것 같았던 김영권의 축구인생에 또다시 암운이 드리웠다. 2016년 9월 중국 프로축구 경기 중 헐크(브라질)와 경합하다 크게 다쳤다. 비골이 골절됐고,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10개월간의 치료와 재활을 거쳐 지난해 7월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축구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주장으로 나선 이란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관중 소리가 커 소통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언이었다. 팬들은 “목 터지라 응원하는 팬에게 할 소리냐”며 분노했다. “축구장이 고요해지게 김영권 옆엔 고요한(서울)을 두라”는 조롱으로 이어졌다. 그의 에이전트인 김성호 FS코퍼레이션 실장은 “당시 대표팀 동료와 축구팬에 대한 죄송한 마음 때문에 영권이가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아내와 두 딸은 김영권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다. [사진 김영권]


태극마크와도 한동안 멀어졌다. 힘들었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었다. 2014년 결혼한 김영권에게는 아내와 딸 둘이 있다. 지난 5월 대표팀 중앙수비수 김민재(전북)가 부상당했다. 김영권은 영영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한때 대표팀 주전 중앙수비수였던 그가 김민재의 대체요원으로 뽑혔다.

러시아 월드컵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전(18일) 때 몸을 던지는 수비로 팬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3차전 독일전에서는 공격수 티모베르너(라이프치히)가 슛할 때마다 몸을 날렸다. 행여 핸드볼 파울이라도 할까 봐 열중쉬어 자세로 이를 악물었다.


28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는 김영권. 임현동 기자


김영권은 0-0으로 끝날 것 같았던 독일전 후반 추가시간에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비디오판독(VAR) 끝에 골로 인정되자 두 팔을 벌려 세리머니를 펼쳤다. 말 그대로 그의 인생경기가 된 것이다. 김영권의 어머니(이미영)는 올 초 폐암 판정을 받았는데 성공리에 수술을 마쳤다. 김영권은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뛰었다. 김영권은 독일전 직후 “4년간 너무 힘들었다. 앞으로 한국축구를 위해 희생하겠다”며 눈물을 쏟았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월드컵 출사표를 던진 김영권. [사진 대한축구협회]


김영권은 월드컵을 앞둔 출사표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다. 독일전 직후 그에게 “죽기로 싸워서 산 것인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 생각을 매 순간 했습니다. 힘든 시기가 없었다면 오늘 골을 넣지 못했을 겁니다. 비판이 저를 발전하게 했습니다.”

카잔(러시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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