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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조고각하, 발밑을 비추어보라

법연선사(중국 11세기)께서 혜근, 청원, 원오 세 제자와 밤길을 걷게 되었다. 마침 불어온 세찬 바람에 원오스님이 들고 있던 초롱불이 꺼지고 말았다.

길을 밝혀 주던 등불이 꺼지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앞뒤를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할꼬?' 그 와중에, 말꼬리를 슬쩍 감아올리며 내뱉은 노회한 스승의 말 품새로 미루어, 이참에 제자들의 수행형편도 더듬어 보자는 속내가 은근하다.

'채색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 혜근스님의 세치 혀가 앞섰다. 정취 물씬한 풍경이다. 절창이다.



'쇠 뱀이 옛길을 건넌다' 질세라, 잇따른 청원스님의 언사가 무겁다. 깊고 미묘하여 아득하다.

이러나저러나 공부가 부실한 중생에겐 어차피 해득이 난감한, 귀신도 곡할 소리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화려하고 묵지근한 도반들의 응대에 눌려, 미적대던 원오스님이 마지못해 입에 머금은 소리를 뱉는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비추어보라는 뜻이다.

쾌재로다. 그래, 살아 있는 말이다. 스승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어떻게 이 어둠을 헤쳐 나갈 것인가, 그 방도를 물은 것이다. 어쩌면 하나 마나 한 하문일 터. 어둠 속에서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천길 절벽 아래다. 그러니 글자대로 뜻을 잡자면, 발밑을 비추어 살펴보라는 말이다.

그뿐일까? 아무튼, '조고각하'는 이후 천여 년 동안 수행자들이 잡도리하여 궁구하게 되는 화두가 된다.

강원이나 선원의 댓돌에는 학인스님들의 새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과, 기둥에 걸린 '조고각하'라는 주련판을 볼 수 있다.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면 그 학인의 마음자리를 알 수 있다. 하얀 고무신이 깔끔하게 갈무리되어 있으면 마음이 정갈하고 잘 정돈된 상태이다. 신발이 널브러져 있으면 신발을 벗는 '지금'의 순간을 놓쳐, 마음자리가 흩트려져 있는 것이다.

수행의 시작은 신발을 제대로 벗어놓는 일부터다.

신발을 잘 벗어놓자면 별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기에, 조고각하의 다른 뜻은 언제 어디서나 아만과 아집을 여위고, 친절한 언행과 겸허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심(下心)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수행자에게는 생명과 같은 몸과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 화두의 숨은 말속은,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자신이 서 있는 가까운 발아래(마음자리)를 살피는 일이라는 데 있다.

그 시대의 선(禪)은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선풍 속에서 '조고각하'는 실행이 없는 헛된 선으로 치부된 구두선(口頭禪)을, '지금 바로 여기'의 현실적 문제로 전환한 획기적 계기가 된다.

조고각하의 궁극은 서있는 자리마다 마음을 다 잡아, 모든 현상의 본질이 무상하여 실체가 없는 것임을 꿰뚫고,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망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마음자리가 '그지없는 한가로움(절대평온)'을 누리게 함이다.

musagusa@naver.com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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