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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손녀에게서 온 카드

모니카 류 / 암 방사선과 전문의
모니카 류 / 암 방사선과 전문의 

[LA중앙일보] 발행 2018/07/0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7/02 18:28

오늘 아침에도 '소중함'으로 채워진 내가 되어 하루를 맞이한다. 주위는 밝고 따뜻하고 조용하다.

'소중한 할머니, 가지고 있다. 멋진 어머니의 일! 알겠어? 스칸디나비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재미있고 안전한 여행을 떠나십시오! 애정, 미준'

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이상하게 쓰인 카드를 읽는다. 아홉 살짜리 큰 손녀가 구글 사전을 찾아 번역해서 쓰고 만들어 제 어미의 엄마인 나에게 어머니 날에 보낸 카드이다. 나는 그때 LA에 없었다. 접힌 카드의 다른 면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Dear Halmoni, Have a grand mother's day! Got it? Have a great time in Scandinavia! Have a fun and safe trip! Love, Jessica Ryoo Thomas' Jessica와 Thomas는 내가 붙인 가명이고, 그 애의 가운데 이름은 나의 성,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남편의 성씨이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아이가 한국말로 쓴 사랑의 문서가 엉망인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뭐 이런 걸 글이라고? 또 글씨는 어떤가? 내 선친의 표현을 빌린다면 '개발 소발'이다.

나는 아이의 빠른 진전을 보고, 다시 한번 한글의 과학성에 놀라지만, 언어란 어느 정도 기본적 교육과 실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글은 어순이 영어와 다르다. 한국말로 번역한 표현이 아이가 익숙한 문화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계 외조부모를 두고, 한국계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이지만, 한국말을 한다든가, 한글을 쓰고 읽고 제 것으로 만들려면 시간과 관심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한번 포기한 적이 있던 터였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Have a grand mother's day!'라는 구절을 직역하다 보니 'have'를 다른 단어와 붙여서 함께 번역하지를 못하고 '가지고 있다'라고 따로 쓰고 있다. 또 'Got it?'이라는 버르장머리 없는 문구는 아이가 평상적인 'good'이라는 표현대신 '좋은 것보다 더 멋진, 더 근사한'이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grand'라는 단어를 쓰고,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Got it?' 했던 것이다. 또 'grand'와 'mother'를 붙여 쓰면 할머니라는 뜻인데 이 두 글자를 띄어 써서 그 효과를 돋보이게 했다.

나는 7월 초 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미국 중고등학교 교장단, 한국어 교사들, 중고교에서 뽑힌 한국어 클래스 장학생 등 세 팀을 인솔하고 모국을 방문한다. 첫째와 셋째 팀은 대부분 비한국계이다. 그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한국말에 대한 자신의 과제를 한국 땅을 밟으면서 나름대로 풀게 될 것을 바라고 있다.

미국으로 귀국한 후, 감사의 카드를 보내올 것이다. 내 손녀와 달리 철자법, 어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손녀가 '개 발 소 발'이 쓴 것 같은 '소중한 할머니', '애정, 미준'이라는 표현을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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