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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월드컵 이변 속의 필연

[LA중앙일보] 발행 2018/07/0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7/04 14:33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팀은 한국에 패해 80년 만에 처음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보다 앞서 참극을 경험한 팀이 있다. 이탈리아 축구다. 이탈리아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언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이 정도 규모의 비극은 흔치 않다. 그것도 한 대회에서 두 번은 더욱 흔치 않다. 세계 축구에서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는 4대 천왕으로 불린다. 월드컵 우승 횟수만 봐도 브라질 5회, 이탈리아·독일 4회, 아르헨티나·우루과이 2회였다. 지난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치욕을 당했고 4년 뒤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이 연속으로 치욕을 당했다. 아르헨티나는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월드컵에서 4대 천왕이 겪은 수모는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경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승자의 전술이 학습되고 확산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이를 경기장에서 구현할 선수들의 수준이 평준화됐다는 풀이도 있다. 세상사가 그렇듯 위기는 물론 외부 환경의 변화와 함께 오지만 그 뿌리는 내부에서 자란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그랬다. 게다가 위기는 영광이 절정에 오른 순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다음 해 잔카를로 아베테가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이 된다. 스포츠계 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 축구협회장이 된 이후 이탈리아 축구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유로 2008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하고 2010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축구를 모르는 정치인 협회장이 불러온 재앙을 겪고도 2014년에 또다시 정치인인 카를로 타베키오가 협회장에 취임했다. 그나마 버팀목이었던 안토니오 콘테 국가대표팀 감독마저 첼시로 떠났다. 타베키오 축구협회장은 콘테의 후임으로 한 번도 강팀을 맡지 못했던 잠피에로 벤투라를 앉힌다. 타베키오가 자신의 지지그룹에서 선발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그 결과는 월드컵 예선 탈락이었다.

세계 축구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탈리아는 스스로 무너졌다. 국민적 분노 속에 타베키오와 벤투라는 사임했지만 12년마다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는 이탈리아의 신화는 끝난 뒤였다. 이 신화대로라면 이탈리아는 2006년 우승 12년만인 올해 월드컵을 안아야 했다.

독일의 16강 좌절은 어떤 면에서 더 큰 충격이다. 독일 축구대표팀의 별칭은 '디 만샤프트(Die Mannschaft)'. '더 팀(The Team)'이다. 독일 축구는 어떤 위기에서도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간다. 흔들림도 기복도 크지 않은 탄탄한 조직력은 상대 팀에게는 절망감을 준다. 오죽하면 "축구는 22명의 선수가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 위력이 2018년에 무너졌다. 그것도 우승 다음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충격이 내부의 와해라면 독일의 충격은 그동안 열심히 조이고 닦아 잘 작동했던 시스템대로 했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독일은 10번의 변혁을 통해 축구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자평한다. 최근엔 1998년 8강 탈락 이후 유소년 시스템과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을 정비했다. 그 결과는 2017년 등록선수 700만 명, 대표팀 5개 팀을 꾸릴 만한 전력, 부상자가 생겨도 균일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됐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리버풀의 심장이었던 디디 하만은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앞으로 10년간 불패의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1년이 안 돼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다른 우승팀이 무너질 때 독일만은 이를 비껴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오만했다는 것이다. 성공한 모델과 전술에 대한 자만과 자기만족에 빠져 승리를 향한 야생마 같은 돌진은 거세됐다. 안정된 시스템이 이런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지만 두 전설의 몰락은 오르막길의 정점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영광은 이를 볼 눈을 가린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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