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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어찌 동해가 마르겠나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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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8/07/07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7/06 19:40

방을 나서며 힐끗 돌아보니 빈 의자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가 보다. 손바닥만한 낡은 책을 안고 있다. 종이가 삭아 가장자리가 부스러져도 시는 멀쩡히 그대로다. '석굴암 대불'이다.

'동해 말랐다오/ 무엇을 지키시오/ 산적적 으스름 달에/ 두견새 지키시오/ 토함산 벋은 다랑이/ 어흐 늘어져 휘덮은 낙락장송 지키시오/ 솔바람 새소리에/ 또 다시 천 년이 갔네/ 몸부림쳐 님의 무릎에/ 통곡하고 싶구나'

월탄 박종화의 시다. 이 시를 처음 맞자 가슴이 뛰도록 놀란 기억이 새삼스럽다. 시란 것이 몇 줄의 글로 동해의 그 엄청난 물을 말릴 수도 있구나 감탄했기 때문이다. 원래 시를 모른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 몇 개 골라 늘어놓고 좋다고 읽어보라는 데에는 질색이다.

고교 2학년 때다. 앞줄에 앉은 몇 명이 무슨 문학동아리를 만든다고 법석을 떤다. 같잖아 한마디 했다. "야 이놈들아, 공업학교 다니는 놈들이 무슨 얼어 죽을 문학이냐? 망치질이나 제대로 배워 집이나 한 채 지을 일이지." 그들 가운데 이름난 옛 소설가와 같은 이름은 있어도 문학인이란 감투를 썼다는 친구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아직까지도 감감하다.

신라 천 년 역사를 지키려 동해의 용이 되었다는 문무대왕의 수중 능이 그 영험을 잃었는지 일본의 식민지 상황에서의 슬픔을 통곡한 시인의 마음이 아리다. 차디찬 돌, 눈을 반쯤 감아 안으로 나를 보고 반은 밖으로 중생을 본다는 부처의 반안(半眼)이 부드럽다. 따지고 대들며 신앙적 대결을 하려 해도 그에 집착하지 않고 훈시나 설교 없는 대답으로 자비로운 미소를 주고 있다.

어찌 동해가 마르겠나. 시대를 원망하는 신앙적 물음이요 몸부림이다. 한이 있고 가락이 있고 잠언이 다 들어 있는 시다. 나라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피를 토하는 절규가 있다.

조그마한 헌 책 하나가 60년이 지난 아득한 학창시절로 보내주어 고맙기만 하다. 그 낡은 손바닥 책에 시신(詩神)이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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