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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양심의 자유와 군 대체복무제

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8일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1939년 일제강점기 강제 징병으로 한반도에서 첫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나온 이래 80년, 건국 이후로는 1953년 한국전쟁 중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래 66년 만이다. 헌재는 국회에 2019년까지 대체복무제를 법제화할 것을 주문했다. 병무청도 제도가 마련되기 전까지 병역 거부자의 입영을 연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해온 기나긴 역사는 끝을 맺은 셈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 집행 정지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병역 거부의 역사는 눈물과 피의 역사다. 병역을 거부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형량을 채워 출소하는 길에 연행돼 다시 재판받고 징역을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고, 강제로 훈련소에 끌려가 입영을 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종교적 이유로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하다 영창에 구금되고, 심지어 헌병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이도 있었다.

기나긴 역사만큼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라는 국내·외 권고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시도도 여럿 있었다. 유엔은 80년대부터 병역 거부권 인정과 형벌 목적이 아닌 대체복무제 도입을 각국에 권고하였다.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국회와 국방부에 병역 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문했다. 법원은 양심적 거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의견은 여럿 있었다. 대법원은 보충 의견으로 대체 복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헌재는 2004년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합헌 의견을 낸 7명의 재판관 중 5명이 대체복무제 등 대안 마련을 주문했다. 16·17·18·19대 국회에서 여러 의원이 입법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와 토론 없이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서는 전해철·박주민·이철희 의원이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군에 입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군에 입대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들을 감옥에 보내 1년 6개월을 가둔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낭비다. 군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마련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우리보다 일찍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대만에서는 초기 대체복무 정원을 5000명으로 잡고 제도를 실시하다, 1만여 명이 몰리자 정원을 1만명으로 늘렸다가 시간이 지난 뒤 대체복무 신청자가 5000여 명으로 줄었다. 대체복무 시 맡는 일이 대부분 사람이 기피하되 사회에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체복무가 결코 군 복무를 기피하기 위한 '쉬운 선택'이 아님을 입증한다.

그래서 대체복무제는 징벌 수단으로 마련돼서는 안 된다. 대체복무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거스르지 않는 방편으로 병역 의무를 다하게끔 하는 것이지, 군에 가지 않는 대신 벌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군 복무의 2배 이상, 심지어는 4배에 달하는 복무 기간을 설정하게 된다면 이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던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진다.

대체복무제는 양심에 따라 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 돼야 할 것이다. 대체복무를 판정하는 기준 역시 병역 거부자들의 신념을 과도히 판단하려 들거나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 병역 거부의 인정으로 우리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진일보한 사회로의 한 발을 내디뎠다.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담대한 대체복무제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하루속히 마련되길 바란다.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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