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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효도계약서' 쓰는 세상

[LA중앙일보] 발행 2018/07/1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7/12 23:03

효도는 본능일까 교육의 결과일까. 유교 문화권에선 학습의 측면을 강조하지만 인류학에선 생존 본능에 가깝다고 본다.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인류의 기원'에 따르면 스스로를 보호할 변변한 힘이 없던 인류는 정보력(문화)에 의존해 살아남는 전략으로 진화해 왔고, 그 정보력의 원천으로서 노인(부모)을 존중하고 도왔다는 것이다. 동서양 할 것 없이 효가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률이자 최고 덕목이 된 것도 출발은 여기서부터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인류의 생존 방식도 바뀌면서 효도의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되면서 부모 자식 간에도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는 '거래 의식'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효도계약서'라는 것도 그렇다. 한마디로 부모가 재산을 미끼로(?) 자식의 효도를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효도와 계약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단어다. 효도가 도덕과 양심, 신뢰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계약은 법률과 의무, 의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은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전통 관습과 기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방점이 효도가 아니라 그 대가로 물려줄 재산에 찍힌다는 것도 찜찜하다.

물론 노년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해는 간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어떻게 100% 믿느냐, 일찍 재산 물려줬더니 찾아오지도 않고 태도가 싹 바뀌었다더라, 그래도 물려주고 싶다면 효도계약서라도 꼭 받아 놓아야 한다 등등. 물론 그렇게라도 해서 자식 얼굴 한 번 더 보고 안부 전화라도 한 통 더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효도계약서 하나로 얼마나 자식의 마음을 붙들어 놓을 수 있을까.

대개 계약이란 계약서를 먼저 내미는 쪽이 갑이 된다. 효도계약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쪽은 자식이다. 아이 교육비에, 주거비에, 허덕이는 생활비에 하루라도 빨리 부모 재산을 물려받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약서 아니라 그 이상도 쓸 판이다. 하지만 속으론 분명 탐탁지 않을 것이다.

지금 60~70대 한국의 부모 세대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산업화의 혜택도 가장 많이 받은 세대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앞 뒤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거기다 예전의 노인 세대와 달리 똑똑하기까지 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온갖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지적 호기심 또한 강렬하다. 효도계약서란 그런 부모 세대가 고안해 낸, 젊은 세대를 향한 또 다른 '갑질'로 비칠 수 있다는 말이다.

계약이라는 점잖은 말로 포장은 했지만 결국은 돈을 매개로 효(孝)라는 무상의 가치를 사겠다는 것이니 효도계약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이미 형용모순이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 자식 관계가 갑을의 계약 관계로 전락하는 순간 가족 공동체로서의 끈은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효도계약서는 안 쓰는 게 답이다. 만약 자식이 효자라면 부모가 땡전 한 푼 물려주지 않아도, 계약서 따위 한 장 없어도 얼마든지 효도를 다 할 것이다. 자식이 불효자일 경우에는 아무리 정교한 계약서를 써도 교묘히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니 효도계약서는 처음부터 쓰나 마나인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가족들은 그런 계약서를 쓸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노년 빈곤이 더 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자식 물려줄 정도의 재산을 가진 노년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거기에 자식 효도까지 돈으로 사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한 욕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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