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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요

아주 착하게 생긴 17세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소녀에게는 두 살 위의 자폐증을 가진 언니가 있단다. 많은 부모처럼 이 가정에서도 관심과 시간이 장애인인 언니에게만 쏠려 있었다.

어느 날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던 소녀가 일등상을 받자 가족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큰딸의 병 때문에 이유없이 죄책감을 느끼고 기를 펴기 어려웠던 부모에게 보람을 가져다준 순간이었다. 그 후 몇 년간 어머니는 각종 학원, 과외 등을 소녀에게 시키며 큰 기대를 보이셨다. 그런데 11학년이 된 어느 날부터 소녀의 성적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언니 때문에 애를 쓰는 엄마가 너무나 불쌍했어요." 소녀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몇 년간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며 점차 학습 내용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본래 집중력에 문제가 있던 그녀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를 포기하고 말았어요" 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며, 엄마는 돌아앉아 울음을 참았다.

자폐증은 아기 때부터 발달이 지연돼 언어 구사나 대화에 문제가 있고, 사고 능력이 떨어지며 행동 장애가 올 수 있어서 온 가족이 영향을 받게 되는 질병이다. 부모들이 죄책감이나 우울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물론 형제 자매들은 행여나 나에게도 이런 병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 게다가 부모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 소녀의 경우, 어떤 경위로 우울 증상을 갖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의 기대에 걸맞은 학업 결과를 이루지 못한 뒤의 자책감이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수 있다. 혹은 주의산만증으로 인해 불안감이나 우울한 감정이 누적되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 나는 소녀는 물론 어머니에게 반드시 상담치료를 받으라고 한인가정상담소나 아태상담치료센터, 또는 개인 치료사에게 보낸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우울하거나 불안 증상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에는 모든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소녀는 어머니와 다른 상담사를 통해 우선 우울 증상과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본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 년 후에 닥쳐올 대학 생활에의 적응 및 무리 없이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심리적 치료의 다짐을 받은 다음에는 육체적인 치료 방법을 의논했다, 우선 그간 미루어왔던 종합 검진을 받게 했다. 불규칙한 월경 때문에 올 수 있는 빈혈증이나 그 나이에 많이 생길 수 있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간이나 다른 장기의 문제가 있는가를 우선 알아보도록 했다. 갑상선 병, 간이나 췌장은 물론 간혹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시에도 우울 증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시간도 지키게 했다. 우울한 10대들의 특징적 증상인 너무 많이 자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체중이 증가돼 자신감이 떨어 진 것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항우울제로 Bupropion (Wellbutreme이라는 상표명)을 추천했다. 아무리 상담으로 심리적 도움을 받고 습관을 고치려 해도 몸 안의 세로토닌량이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회복이 너무 더디거나, 부분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약은 세로토닌 이외에 도파민도 많이 생성시켜서 환자의 집중력도 향상시키고, 의욕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회의 학생회 모임이나 다른 그룹 활동을 통해서 학교 밖에서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익히게 하였다. 교회나 기도 이외에도 요가나 영상의 시간을 갖고, 영적인 힘을 기르는 방법도 연구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미소짓는 모습으로 내 사무실을 떠났다. 마음 착하고 영리한 딸은 곧 과거처럼 훌륭한 학생이 될 것이다. 그것이 더 이상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니까.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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