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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고 서정기님을 추모하며

한국 유학의 대가이신 서정기 전 성균관장님이 얼마 전 열반에 드셨다. 분야도 다르고 연배도 차이가 나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홍복(洪福)은 누리지 못했지만, 워낙 존경하던 분이셨기에 그분의 인간됨을 기리는 것으로 조문을 못한 죄송스러움을 대신하고자 한다.

1. 언제나 당당하셨다.

명심보감에, 마음으로부터 남에게 지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다(心不負人 面無慙色)고 하였던가! 그 역시 6.25 동란의 전화 속에 조실부모하고 할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으며, 더구나 불행 중의 불행이라는 중년 상처까지 하여 가정적으로 매우 불우했지만, 경륜과 포부는 하늘은 찌를 기세였다.

시대가 그를 알아보지 못해 세속적인 벼슬도 없이 '동양문화연구소'라는 간판 아래 한평생 후학을 가르쳐 온 가난한 선비였지만, 조선시대의 우리의 선비들이 그랬듯이 어디서고 입만 열면 사자후를 토하는 호연지기가 있었다.



2. 명리를 초월한 분이다.

그가 권력 주변에 얼씬거렸으면, 그의 풍채나 실력으로 보아 뭐라도 한자리했을 것이다. 요사이 학벌이 상향 되어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박사학위를 하려고 혈안이다. 그러나 그는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가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분의 식견과 인격 앞에 박사니 교수니 하는 직함은 물론이고, 그의 이름 앞에 흔히 따라붙는 거유(巨儒)니 대유(大儒)니 하는 수식어 역시 거추장스러운 느낌이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의 학문을 우러러 퇴계, 율곡, 우암에 이어 서자(徐子)라는 존칭을 서슴지 않지만, 그는 일생을 묵묵히 서울의 한 허름한 2층 사무실에서 후학을 가르쳐 왔을 뿐이다.

3. 이 시대의 문장가이다.

필자는 운이 좋아 그의 글을 교정을 보는 행운을 누린 바가 있다. 그의 연령대나 학문의 내용으로 보아 구학은 훌륭하지만, 영어를 비롯한 현대 어휘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 현대 어법에는 다소 약할 수가 있고, 문장의 수사가 고루하여 현대인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하여, 그분에 비하면 신학문도 한참 신학문을 한 필자가 읽어도 표현이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 어느 것 하나 걸림이 없었다. 어쩌다 '하나 걸렸다!' 하고 사전을 찾아보면 십중팔구는 그의 표현이 옳았다.

5년 전 열반하신 어머니 천도재에 오셔서 명복을 기원하는 인사말씀에 멋들어진 창까지 곁들여 주셨다. 그분의 인격과 학문적 깊이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내용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감각과 정서가 시대와 대중에 어울릴까 하는 걱정은 적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우(杞憂)였다. 마치,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21세기 미국사회에서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것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초심을 지키는 일이 간단치 않음을 절감한다. 성직자로서 그분의 당당함, 진리에 대한 열정, 고상함, 순수함,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을 많이 본받고 싶다.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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