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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NY 퀸즈칼리지 민병갑 석좌교수 "위안부 문제,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최수진 기자 choi.soojin@koreadailyny.com
최수진 기자 choi.soojin@koreadailyny.com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7/20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8/07/19 20:30

가난 탓에 7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
아시안 커뮤니티 연구 독보적 위치

학자로서의 도덕적 책임감 통감해
위안부 역사 영문 책 집필 마무리

19일 퀸즈칼리지에서 만난 민병갑 교수가 위안부 역사의 참혹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일 퀸즈칼리지에서 만난 민병갑 교수가 위안부 역사의 참혹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90년대에 시작된 '정신대' 폭로 운동이 이제 30년을 바라보는데, 금세 해결될 것 같았던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통감합니다."

위안부 역사를 사회·역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영문 서적을 집필하고 있는 민병갑 뉴욕시립대(CUNY) 퀸즈칼리지 석좌교수는 "반 인륜적인 위안부 역사를 세상에 알리는 게 학자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책을 쓰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에 들어가 현재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위안부 수용소의 잔혹한 참상: 위안부는 섹스 도구였다(가제목)'. 하지만 민 교수가 이 책을 처음 구상한 건 지난 1990년대 초반이다.

지난 1993년 위안부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가 뉴욕을 방문해 뉴욕한인회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다. 그 때 민 교수는 김 할머니의 증언을 영어로 통역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적 증언을 단어 하나 하나 그대로 통역한 민 교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 날의 충격을 잊지 않고 참혹한 위안부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는 책을 쓰기로 결심한 민 교수는 1995~2001년 다섯 차례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나눔의집과 황금주 할머니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민 교수의 위안부 서적 출간 계획은 개인적 사정으로 10여 년간 중단됐다가 지난해 다시 시작됐다. 2015년 굴욕적 한.일 합의가 나온 뒤였다.

민 교수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성노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성노예의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국제사회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자국의 입장을 널리 알리려는 일본 정부를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한 영문 서적의 발간"이라고 강조했다. 역사에 있어 피해자의 증언은 그 어떠한 증거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를 비롯한 미국 내 여러 도시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 "더 많은 도시에 기림비를 세우려면 타민족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고, 이번에 출간되는 책은 그러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해 낼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민 교수는 자신도 어렵게 세상을 살아온 약자였다.

충청남도 보령군의 산골 마을에서 1942년에 태어난 민 교수는 여덟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었다. 7남매 가운데 6명이 모두 어릴 때 목숨을 잃었고 민 교수 혼자만 살아 남았다.

서울로 올라 가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63년 서울대 역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과외와 가정 교사 등을 하며 생업을 이어가야 했고, 그래서 졸업은 1970년에야 했다. 1972년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 땅을 밟은 민 교수는 조지아주립대에서 역사학 석사, 교육철학 박사, 사회학 박사를 마쳤다.

어렵게 박사를 마쳤지만 45세의 나이에 영어마저 완벽하지 않은 이민자가 교수직을 얻긴 쉽지 않았다. 100여 곳이 넘는 대학에 지원서를 냈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었고, 캘리포니아주 LA에선 교육행정직 제안이 있었지만 학자의 길을 걷고 싶었던 민 교수는 "배가 고파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다짐으로 버텼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민자 커뮤니티 연구를 하라고 다른 대학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87년에 퀸즈칼리지 사회학과 교수로 채용된 민 교수는 "한인을 비롯해 중국.인도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플러싱은 내가 사회학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빠른 도약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특별한 곳"이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사회학을 한 이유는 동포 전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퀸즈칼리지의 필요와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인 이민자의 유입은 민 교수의 연구에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제공했다. 1996년엔 한.흑 갈등이 불거져 나왔고, 한인 주력업종이었던 청과업계는 흑인 고객과 백인 도매상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간 상인의 고충에 시달렸다. 이를 소재로 민 교수가 출간한 '컷 인 더 미들(Cut in the Middle)'은 한인 이민자의 고충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창구가 됐고, 이 책은 다음 해인 1997년 아시안아메리칸학회가 수여하는 사회학 부문 우수서적상을 받았다.

또 2005년 출간한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백과사전'은 전국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20개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수로 임용된 지 8년 만에 정교수가 된 민 교수는 지난 2010년 한인 이민 사회 연구를 위한 '재외한인연구소'을 설립했다. 한인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연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논문과 세미나를 발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위안부 영문 서적 발간도 재외한인사회연구소의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집 8권을 20번 이상 독파하며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민 교수는 "한국과 미주 한인커뮤니티의 이슈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여성 인권의 이슈로 위안부 역사를 끌어올리기 위한 우리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후원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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