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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출신 노회찬, 노동자와 서민 대변한 진보 아이콘

배재성
배재성 기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7/22 19:19


 4일 오후 오일장이 열린 충북 충주시 연수동 연원시장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충주시의원 선거 사선거구에 출마한 채선병 후보 지원 유세 후 채소를 팔러 나온 상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종대 원내 대변인과 채 후보가 함께하고 있다.

23일 숨진 채 발견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같은 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단 둘뿐인 3선 의원이다. 제20대 총선에서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56년 부산 태생인 노 의원은 경기고 재학 시절부터 유신 반대 운동 등에 가담했다. 고려대 재학 중에도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으며, 1980년대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혐의 등으로 오랫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경찰 당국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1982년에는 각종 시위를 주도·불온문서를 배포했다는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의 중앙위원을 맡았다. 격주간지 ‘사회주의자’ 편집위원으로 인민노련 활동을 하던 중 1989년 체포되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1992년부터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 몸담으며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을 역임했다. 이 당시 많은 빚을 지게 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현실정치에 오랫동안 등장하지 못하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부터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총선을 통해 각종 토론 프로에 출연하면서 유머 있으면서도 ‘촌철살인’인 언행을 선보여 단숨에 유명인사에 등극했다. 노 의원의 활약에 민주노동당은 비례당선권인 5~6번을 뛰어넘었고, 비례대표 순번 8번이었던 그 역시 당선됐다.

당선 이후엔 유명 진보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당내 갈등이 심화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10년 서울시장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나섰다.
2013년에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의 검사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19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서 재선에 성공했다.

노회찬 의원에 대해 대중의 일반적 평가는 호의적인 편이다.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대중주의적 정치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도권 정치에 연착륙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편, 23일 경찰에 따르면 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38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에서 투신해 숨졌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됐고 경찰은 해당 내용을 파악 중이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로부터 노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 4600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오후 정의당 노회찬(왼쪽),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가 미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의회와 행정부 관계자 등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미국의 자동차 고율관세 부과 등 통상 현안에 관한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고 왔다.

앞서 노 의원은 국회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해 미 의회와 행정부 관계자 등을 만나고 22일 귀국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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