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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앵무새 살리기'

김완신 편집국 부국장

미국 고교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은 무엇일까.

지난달 '르네상스 러닝 웹'이 자체 사이트에 접속한 300만명의 9~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로 나타났다.

1960년 하퍼 리가 출간한 이 책은 1930년대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인종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출간 1년후에는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62년에 베스트셀러 상을 수상했다.

앨라배마주의 작은 마을에서 마옐라라는 백인 처녀가 집안 일을 도와주던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유혹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백인 처녀의 아버지는 무고한 로빈슨에게 백인여자 성폭행 혐의를 씌운다.



양심있는 변호사 애티커스는 억울한 흑인 청년을 위해 변론에 나서고 무죄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만 백인 중심의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결국 로빈슨은 감옥에 갇힌 후 탈출을 시도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앵무새 죽이기'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됐던 미국 남부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을 고발하고 있다. '편견'은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 더욱이 편견은 아집을 동반하기 때문에 설득되기가 쉽지 않다.

얼마전 밸리 데일리 뉴스에 특별한 필드트립이 소개됐다. 밸리 지역의 초등학교 4학년 학생 25명은 교사의 인솔로 필드트립을 갔다. 목적지는 동물원이나 박물관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간 곳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하루치의 일을 얻으려 이른 아침부터 모여 드는 하드웨어점 홈디포였다.

교사가 홈디포로 필드트립을 정한 것은 학생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지나치면서 보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나쁘고 위험하고 물건을 훔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필드트립을 통해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막연히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들도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고 자신들과 비슷한 아이를 둔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진스런 마음에 잘못 자리잡았던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9일 AP통신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피부색'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유권자의 상당수가 오바마의 피부색 때문에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백인 노동자가 많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건주 등에서 승패가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 놓았다.

오바마가 200여년 간 그림자처럼 존재해온 인종 편견을 딛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화적인 업적이다. 대통령이 못된다고 해도 이정표로 기록될 사건이다.

11월 본선을 남겨 두고 있다. AP통신이 전망했듯이 '피부색'이라는 편견이 대선의 당락을 결정지어서는 안된다. 존 F. 케네디는 '전장의 무덤엔 흑인과 백인의 구별이 없다'고 했다. 이제 세계는 피부색으로 구분지어진 '인종'이라는 낡은 사고를 버리고 '인간'으로 하나 돼야 한다.

흑인 청년을 변호한 애티커스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는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현실의 앵무새는 로빈슨이었고 유색인종이었고 편견으로 억울하게 소외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앵무새를 살려야 한다. 앵무새가 죽은 세상보다는 하늘 높이 앵무새가 맑게 노래하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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