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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소수의 힘

이종호 편집위원

4~5세기에 걸쳐 라인강 유역에 게르만 계통의 강력한 나라가 세워졌다. 지금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뿌리가 된 프랑크 왕국(486-987)이다. 역사는 이 나라를 훈족에 의해 촉발된 민족 대이동 뒤의 혼란을 수습하고 유럽의 문화적.정치적 통일을 실현한 최초의 왕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카롤루스 대제 또한 중세의 전 시기 그리고 지금까지 유럽의 통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한다.

프랑크 왕국 멸망 이후 유럽은 분열과 반목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렇지만 그리스 로마문명과 기독교라는 문화코드는 늘 공유하고 있었다.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인들은 묻어두었던 통합의 꿈을 다시 움 티웠다. 미국.러시아.중국과 같은 초강대국들에 맞서려면 뭉쳐야 힘이 생기고 힘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사회의 현실임을 자각했던 것이다.



1957년 6개국으로 시작한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첫발이었다. 1993년 유럽연합(EU)출범은 꿈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지금까지 27개 회원국이 동참했고 인구도 4억9000만명으로 중국(13억명) 인도(11억명)에 이어 세계 3위의 거대 국가 연합이 되었다. 13개의 식민지 주가 모여 미합중국을 만들었던 것처럼 유럽합중국의 탄생도 이제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암초를 만났다. 지난 주 인구 400만의 소국 아일랜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일랜드는 정치적 통합의 근간이 될 리스본 조약에 대해 2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국민투표로 찬반을 물은 나라다.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의회 비준만 받으면 되게 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유럽 연합 정상들이 몇 년 동안 씨름하며 이끌어 낸 통합 헌법이 1%도 못 되는 소수의 벽에 부딪쳐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아일랜드가 반대했다고 해서 통합 운동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년을 기다려 온 통합의 꿈은 다시 난망해 졌다.

역사의 물줄기는 이처럼 예기치 않은 소수에 의해 틀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 소수는 단순히 산술적 소수가 아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소수다. 아일랜드 국민들이 그랬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명분 보다는 당장 어려워진 경제와 정부의 정책 실패에 분노해서 투표장으로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을 달궈 온 쇠고기 민심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미국 쇠고기가 온다니까 그저 싸고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다수 국민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광우병 위험을 찾아내고 재협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던 것은 행동하는 소수였다. 방향도 못찾고 헛발질만 해대는 정부에 대해 감동을 주지 못하는 대통령의 독주에 대해 불신과 갈등만 키우는 정치 부재의 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하고 성원하며 동참했던 것은 그 다음이었다.

소수의 힘은 간과되기 싶다. 요즘 같이 다수 만능의 환상이 지배하는 시대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숫자는 양을 나타낼 뿐 질의 차이까지 드러내지는 못한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전체 한국인 중에서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소수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깨어 있는 소수다. 행동하는 소수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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