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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동정을 지킨 소년

[LA중앙일보] 발행 2008/07/07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8/07/06 16:42

수잔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우리는 2년동안 사귀어 왔습니다. 서로 순결을 지키자고 약속했어요. 저는 아직도 동정(Virgin)이예요. 그런데…”라고 말하면서 소년은 흐느껴 울었다.

소아과 의사의 청으로 아침 일찍 만나 본 17세의 환자다. 그는 2달만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이다. 그토록 믿고 사랑한 타니아가 이미 다른 남학생과 사귀는 것을 알고 죽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을 믿고 사는 어머니나 믿어 온 신앙을 지키려면 병원의 도움이라도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소년은 타니아에게 몇 번이나 그 남학생과 섹스를 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타니아가 찾아오면 자살할 마음이 없어질 거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간 다른 일로 마음 상한 적은 없었느냐고 묻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보조 간호사인데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2년간 집에서 쉬고 있다”고 답했다. 상해보상 청구 소송을 하는 동안에 경제적 타격이 심했다. 지난 몇 달간은 아버지마저 병으로 쉬고 있는 상태다.

어머니가 소송 문제로 고용주와 싸우는 동안 그에게도 마음의 평화가 없었다. 분노가 커졌다. 어머니의 상사들에 대해서, 무능한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그리고 무정한 이 세상 전체에 대해서. 인간의 감정문제를 해결해 주기에 법은 너무나 무력했고, 어머니의 직장 복귀는 더욱 지연되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의 우울증이 심해졌다.

부모가 우울증을 앓을 때 자녀에게 미치는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나치게 부모와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부모가 울면 자신도 울고, 매사에 흥미를 잃는다. 또는 반항적이 된다. 가출하거나 온갖 말썽을 일으킨다. 슬퍼하는 부모보다는 화를 내는 부모가 기운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계획한 것이 아닌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또 다른 유형은 나의 환자처럼 ‘승화’의 방법을 택한다. 분노와 아픔의 감정 방향을 전환시켜서 사회가 용납하는 쪽으로 재조정하는 무의식의 행동이다. 빨리 어른이 되는 셈이다. 그는 가정의 경제를 도우려고 일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후와 주말에 매직 마운틴에 가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최근에는 보험 회사의 훈련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의 직업에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타니아와의 미래를 꿈꾸며 그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자신에게 엄습하는 우울이라는 병과 싸웠다. 타니아는 이 소년이 살아갈 ‘존재이유’인 셈이다.

이제 타니아라는 외부의 대상에 걸었던 모든 희망과 사랑을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비록 타니아가 없더라도) 일을 계속하고 학업을 마치기로 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타니아를 거쳐서 이제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전이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제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되면, 어느 날엔가는 새로운 사랑을 받을 만하게 되겠군요.” 얼마나 영특한 깨달음인가!

병실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퇴원 후 외래 정신과 치료를 당부하며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앞으로도 한동안 소년은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살’이라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님을 당분간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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