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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서정주 '정신병'의 실체

[LA중앙일보] 발행 2008/07/0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7/07 16:40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시인 서정주씨는 생전에 자신이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정신과 의사로 볼 때 정신병은 아니다. 그러면 그의 '정신병'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신과 응급실에서 흥분 자해 환각 망상 혼란 같은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찰할 때 무조건 정신병 진단을 내리기 전에 빠른 시간 안에 고려할 사항이 여러 가지 있다. 그것은 두뇌에 대한 타박상 영양실조 내분비 질환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또는 이로 인한 금단 증상 뇌암 전신 감염 같은 정신 증세를 유발하는 내과나 외과적 상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서정주씨의 과거 병력을 조사해 보면 그는 1943년에 학질로 열병을 앓아 의식이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육체까지 대동하고 하늘을 둥둥 떠서 날아다니는 공중 유영을 경험했다. 이것은 나중에 진단받은 정신분열증과는 관련이 없는 심한 열병에 의한 결과다. 그가 1948년에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하면서 직장염이란 위장병으로 고생했다.

또 20대부터 지녀오던 하혈병이 악화되었다. 그 결과로 피로가 쉽게 오고 심장까지 쇠약해졌다. 직장염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항상 조금씩 대변을 통해 신체에서 피를 잃는다.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빈혈이 점차 악화되는 것이다.

그는 속이 나빠 점심으로 흰 무리 떡을 한 덩어리씩 가지고 직장에 가서 그것을 물에 풀어 전기 곤로에 끓여 먹고 지냈다. 그래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씨는 그 모습을 보고 "남산골 샌님은 풀되죽만 마시고도 점잖게 이를 쑤셨네"라면서 속병으로 고통받는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그는 10대 후반부터 과도하게 술을 마셨는데 시인은 그 버릇을 '벼락 소주'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술을 천천히 마시며 음주를 즐기기보다는 짧은 사이에 독주를 퍼 마셔 곧장 취기를 느끼기를 선호한 듯 하다.

예술과장 시절에도 업자들로 부터 자주 술대접을 받았다. 그가 지은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 의하면 "지금도 술과 어떤 특수한 안주 밖에 외식을 잘 않았지만 당시 어떤 업자가 있어서 밤에 베푼 초대연에 나갔다가 밥도 안 먹고 담뿍 취해 벽에다가 큰 먹 글씨로 '우리도 두루 잘 살아야 한다'고 엉뚱한 글발을 써 놓았다고 뒤에 누군가가 귀띔해 알려주었다…"

결국 젊어서 부터도 안주나 영양분을 잘 섭취하지 않고 술만 많이 마신 후 자주 정신을 잃고 심하게 주사를 부렸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이후에 경험한 서정주씨의 정신병은 악화 일로가 된 빈혈 늑막염(당시 늑막염의 원인은 대부분이 결핵이었다) 심한 영양실조로 인해 약해진 몸에다가 과로까지 겹치고 인민군에 쫓기어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쌓인 사람이 분별 없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정신병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알코올성 정신병에서 환각 망상 착각 혼돈 불안 기억 상실과 함께 우울증 등은 자주 보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중년기에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버스 안에서 허리춤을 내리고 소피를 본 다음 승객들 앞에서 "내가 천하의 서정주다"라고 했다던 기행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 역시 술에 취해 객기로 한 것이지 '정신분열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겠다. 흔히 기이한 행동을 하면 정신질환을 원인이라 생각하는데 시인 서정주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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