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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한탕 하려고 유지범으로 이름 바꿨다고 했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21 01:35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돈스코이호 투자자 보호와 사업 정상화를 위한 비대위 기자회견'에서 홍건표(왼쪽) 전 동아건설 회장 비서실장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비대위 제공]

[인터뷰] '보물선 투자사기 고발자' 홍건표씨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 관련 투자 사기 의혹 등을 경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이 사건을 처음으로 수사 기관에 고발한 홍건표씨가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투자자 보호와 사업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공동위원장을 맡은 홍씨는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주범인 유지범 전 회장을 하루빨리 체포하고 공범들의 사기행각을 밝히는 것이 더 이상의 투자자 피해를 막고 이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조치”라며 경찰의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또 “10만명이 넘는 투자자 중 상당수가 여전히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추진하는 암호화폐 사업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며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송명호라는 새 회장을 내세워 투자자를 현혹하는 등 대담한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는 유씨의 실체를 투자자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동아건설 임원으로 일하던 2000년대 초반, 당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지금의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해수 박사팀과 함께 돈스코이호 탐사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돈스코이호 관련 의혹들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인 지난 6월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유지범(실명 유승진) 전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 등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취재진은 이번 사건의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홍씨를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돈스코이호로 사기 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Q : 유지범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A :
“2014년쯤이다. 자신을 파산신청을 한 D 기업의 채권단 위원장으로 소개하더라. 대기업에서 일한 내 경력을 좋게 봤다면서 나를 법정관리인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런데 유씨가 나를 앞세우고 뒤로는 투자자를 끌어들여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Q : 당시 유씨를 직접 만나지 않았나?
A :
“사정이 있어 직접 만나기 어렵다면서 자신의 측근을 대신 보냈다. 유씨 측이 제시한 여러 서류가 상당히 치밀하게 만들어져 당시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유씨가 베트남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더 빨리 유씨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Q : 유씨가 돈스코이호 사업에 어떻게 관여하게 됐나?
A :
“과거 동아건설 시절 중단된 프로젝트를 재개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내가 포항해양청에 돈스코이호 인양 신청서를 접수했다. 언론에도 보도가 됐는데 이후 인양을 위한 투자금이 조달되지 않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유씨가 싱가포르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돈스코이호를 이용한 가상화폐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또 국내에 있는 자신의 누나와 측근들을 내세워 돈스코이호 탐사를 진행할 신일그룹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암호화폐 국내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전부터 돈스코이호를 이용해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아 몇 차례 경고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이미 4~5월쯤 150조원 보물선만 인양하면 대박이 난다면서 끌어들인 투자자가 10만명이 넘어섰다. 계속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아 6월에 검찰에 고발하게 된 것이다.”

“송명호씨는 유지범에게 1600만원 사기당한 사람"


Q : 유지범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언제 알았나?
A :
“지난해 하반기에 유씨와 통화한 적이 있다. 베트남에 있으면서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는 것 같아 ‘나쁜 짓 그만하고 조용히 살라’고 충고했었는데 그때 그가 이름을 유지범으로 바꾼 사실을 알았다. ‘유지범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자기 친형이라고 하더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자 그제야 유씨가 ‘어차피 한국에는 못 들어가는데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크게 한탕 해 먹을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 뒤 만들어진 싱가포르 신일그룹 홈페이지에 ‘회장 유지범’으로 돼 있어서 결국 ‘큰 사고를 치는구나’ 생각했다.”


Q : 최근 유씨 후임으로 송명호라는 사람이 새 회장이 됐다. 송 회장 명의로 사업이 정상 진행 중이라고 투자자들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A :
“송씨는 2016년 유씨가 알게 된 사람이다. 나는 송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 송씨는 자신이 미국 교포로 사모펀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자신이 미국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100조원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당시 유씨는 ‘한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데 관련 서류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비용이 들어간다’며 송씨에게서 1600만원을 빌린 적이 있다. 유씨의 측근 김모씨가 이 돈을 받아 일부를 썼고, 나머지는 유씨에게 송금됐다. 나중에 송씨가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는데 돌려주지 않자 송씨가 유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씨는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참고인 중지가 돼 사건이 유야무야 됐다. 송씨는 돈도 받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송씨도 유씨에게 사기당한 사람이다. 그런 송씨를 회장이라고 앞세워 투자자를 속이고 있다.”

"누가 물으면 라오스에 있는 것으로 해달라더라"


Q : 송 회장은 돈스코이호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말인가.
A :
“송 회장 명의로 암호화폐 사업이 정상 진행 중이라거나 돈스코이호 인양을 추진한다고 나온 공지들은 모두 실제로는 유씨가 만든 내용이다. 송씨가 암호화폐 전문가이며 해양기술 분야의 전문가라고 투자자들에게 소개한 것도 유씨가 허위로 지어낸 얘기다. 송 회장 명의의 공지문이 사실이라면 송씨 본인이 직접 나서서 언론과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면 되지 않겠나. 얼마 전 유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송 회장은 (언론이) 직접 만나기 어렵다’고 했던데 가짜 회장을 내세웠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Q : 투자금 일부가 유용됐다는 증언들도 나왔는데.
A :
“내부에서 받은 제보들에 따르면 유씨 뿐 아니라 그의 측근들이 가족들의 계좌를 이용해 일부 투자금을 빼돌려 썼다고 한다. 또 유씨가 국내에 있을 당시 알고 지내던 한 여성이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의 법인 통장을 관리해 온 것으로 안다. 이 여성을 통해 베트남에 있는 유씨에게 투자금의 일부가 흘러갔다는 제보도 있다. 경찰이 계좌 추적을 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밝혀질 것으로 본다.”


Q : 인터폴에서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유씨는 베트남에 있을까.
A :
“유씨가 자신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오간다고 인터뷰했던데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나와 통화할 때도 (베트남에 있으면서) ‘누가 물어보면 라오스나 캄보디아에 있는 것으로 얘기해 달라’고 하더라. 내게 여권이 만료돼 베트남 국경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기가 어렵다고 얘기했었다.”

"돈스코이호 소유권은 국가에, 나는 인양 업자일 뿐"


Q : 지난해 추진했다가 중단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은 어떻게 되나?
A :
“우선은 유씨 일당의 이번 사기극이 경찰 수사로 명명백백 드러나는 것이 급선무다. 이후 기회가 된다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인양 사업을 재개하고 싶다.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보물과 상관없이 돈스코이호는 그 자체로 러시아나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군함이다. 유씨 일당의 범죄 행위로 돈스코이호가 사기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


Q : 돈스코이호 소유권은?
A :
“2003년 동아건설과 유해수 박사팀이 처음으로 돈스코이호 탐사에 성공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돈스코이호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훗날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인양에 성공하더라도 나는 국가로부터 허가받은 인양 업자일 뿐이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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