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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집중분석]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22 09:02

150년간 북한 깔보다 판판이 당했다!

북한 내부 소프트웨어 분석 없어 권력의 속성 정확하게 투시 못해…미국서 북한판 [국화와 칼] 나와야 북핵 문제 해법도 나오지 않을까



지난 6월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 관광객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사태는 미국에서 중국 연구(China Studies)를 촉발했다. 중국은 1956년부터 인민공사라는 집단농장 시스템으로서 농사를 지은 결과 10년간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는 없었다. 정치적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마오쩌둥(毛澤東)은 홍위병이라는 정체불명의 청소년 완장단체를 조직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초대 중앙인민정부 주석인 마오를 공격하는 지식인과 비판적 반대세력을 인민재판식으로 압박했다. 장유유서의 유교사회에서 십대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파괴 없이는 건설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기득권의 장년층을 혼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정확히 설명해 줄 전문가가 미국에는 없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횡행하는 광기의 역사를 해설해줄 만한 전문가를 구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뒤에서 조종하는 혹세무민의 사건이란 정도의 추측만 난무할 뿐 언제, 어디까지 문제가 확산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자유, 진보 등 서구가치를 신봉하는 미국 정치학자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조반유리(造反有理)의 전통문화 파괴 운동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미국 학계에는 마오의 부인인 장칭(江靑) 등 극좌 4인방이 주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라는 당대의 중국 현대사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학문적 논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중국 연구는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여전히 국공내전의 혼란 속에서 소련과 유사한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가 수립된다는 초보적인 인식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기자로서 13년간 거주하며 최초로 마오쩌뚱을 인터뷰한 에드거 스노가 저술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China)](1968년 초판) 정도가 대표적인 중국 연구서였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기록한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어린 홍군 병사(小鬼)에 이르기까지 중국 혁명에 참가한 인물들의 면면과 현대 중국 탄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만으로 중국을 모두 설명할 순 없었다. 중국이라는 고대와 근대 및 현대국가에 대한 하드파워는 물론 역사, 문화 및 행동양식 등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와 질서와 권위에 순응하는 공맹(孔孟)의 유교문화가 기형적으로 결합됐다. 게다가 “변방이 시끄러우면 황제가 베개를 똑바로 베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1개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 안팎에 그칠 만큼 권력의 부침이 극심하고 이민족의 발흥과 몰락 등으로 순식간에 왕조가 교체되는 중국사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의 시간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최고지도자 암살 시도가 없는 이유

지난해 4월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북한군 경비병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일행의 사진을 찍고 있다.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미국 정부와 학계는 체계적인 중국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미국 국무부, 교육부를 비롯한 당국은 각 대학에 설치된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중국학연구소를 별도로 분리, 확대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 등 중국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학자들에게 거액의 연구 펀드를 제공했고, 유능한 신진학자를 발굴해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중국의 문화와 역사, 인민들의 습성 및 마오쩌둥 후계 권력층의 리더십 등 다양한 연구는 성과를 나타내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죽(竹)의 장막’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키신저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이어지고 핑퐁외교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북·미 간의 핵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대(對) 북한 무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통념적인(unconventional leader) 지도자야 ‘돈이 제일 중요하다(Money does matter)’는 인생관이 모토인 만큼 예외로 치더라도 미국 조야의 수많은 대북 협상 경험조차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과거의 협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유사한 협상의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대통령 역시 과거 협상 결과와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로 없다는 인식을 갖는다. 연구와 분석이 미진하니 대책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과거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해 지금도 미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필자에게 단골로 제기하는 질문의 하나는 “언제쯤 북한이 붕괴(collapse) 되고, 쿠데타의 주역은 어느 세력이 될 것인가”이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쿠데타군이 평양의 주석궁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대동강과 보통강에 있는 11개의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이다. 평양의 지도를 펼쳐 놓고 평양방어사령부의 병력과 반란군 병력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호위총국의 부대 위치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의 상상만이 난무할 뿐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인 1979년 10·26 사태와 같이 최측근이 최고지도자를 암살하는 기묘한 사건이 왜 평양에서는 발생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과거 필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재직 시절 김정일 위원장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총국의 최말단 부서에 잠깐 근무하였다는 탈북자와 제3국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왜 김 위원장에 대한 살해 시도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우선 물리적으로 저격이나 살해 시도는 불가능하다. 경호체계는 철벽이다. 심지어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신에 사로 잡혀 있다. 특히 저격이나 살해를 시도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집안에 누구 하나라도 호위총국 근처에만 근무해도 사돈에 팔촌까지 호위호식하며 사는데 최고지도자를 위해할 필요가 있는가?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반대로 삼족이 몰살당하는데 위험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빈곤도 권력도 모두 상대적이다. 북한에서 우리 부처의 과장급 정도의 관직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지 3년 정도 지나면 남한 사회가 참 무료(?)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북한에서 과장급 정도의 직책이 민간에 대해 누리는 권력의 맛에 비하면 남한 사회는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도 별것이 없다는 인식을 한다. 고위급 탈북자들은 철저한 계급·권력 사회의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쥐꼬리만 한 권력도 그것을 행사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 상당했다고 고백한다.

북한 붕괴나 최고지도자에 대한 암살 기도 등은 북한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투시하지 못한 결과에 따른 궁금증이다.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등 동유럽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의 말로가 김씨 혈통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추론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특히 70년간 지속돼 온 독재 정권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라는 것은 토정비결을 믿거나 말거나 신수 보기와 다를 바 없다. 미국 정보당국은 해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를 불러들여 식량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연명하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요구한다. 미 국민의 입장에서 햄버거를 두 개 먹다가 한 개 먹으면 죽고 살 일이지만, 빨치산 전통을 이어받은 북한 인민에게 한 끼 굶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젖먹이 시절부터 주체사상을 학습해 온 인민들이 수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미 서부개척시대에 막강한 보안관에게 저항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으로 재직했던 황장엽 전 주체사상 비서는 ‘서울에 와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매주 토요일 아침에 소속기관 전체 직원 앞에서 일주일간의 잘못된 일을 자아 반성하는 ‘사상 총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주체사상 비서와 김일성 대학총장인 선생도 총화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주 30분가량 지난 한 주 무조건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면 인간이 더 이상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미국의 북한 연구자들은 이 같은 북한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동양문화를 넘어 권위주의 가부장제와 유일수령 사상체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감시와 통제로 인민은 물론 간부조차 촘촘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같은 한민족으로 대학에서 북한학과(Northkorealogy)를 설치하며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는 남한의 전문가조차 북한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하물며 미국의 전문가들의 분석 수준은 매우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문은 미국 북한 연구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에 대해 사전 학습이 부실함은 미국 행정부가 과거 북한의 협상 행태와 전략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 싱가포르 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은 매우 전략적이고 계산된 발언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랬던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박사 수준의 김정은 발언, 고등학생 수준의 트럼프 발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첫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본인 결단으로 회담을 제의했고, 실행했다는 의도를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길지 않은 두 문장이지만 북·미 관계의 과거, 현재 및 미래를 압축해서 본인들의 의지를 과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박사과정 수준이었다면 그에 반해 트럼프의 발언은 고등학생 수준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다. 아주 좋은 대화가 될 것이고, 엄청난 성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영광이다. 우리는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도, 의지도 결여된 청소년들의 인사말에 불과했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의 모두발언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기습적인 한 방을 먹은 것이다. 권투선수가 링에 올라가서 워밍업도 하기 전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부실한 합의문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준비 없는 정상회담이 가져올 외교 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대상이다.

미국 전문가와 국무부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임하는 북한 외교의 전략과 합의문 도출 전후의 협상 행태를 포함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핵실험이 6차례가 지속되도록 ‘북핵 매뉴얼’을 만드는 등 북핵 대응에 손을 놓았다. 오바마 정부(2009~2016)는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 수수방관 정책으로 북핵 처리에 실패했다. 체계적으로 준비된 북한 상대 외교 매뉴얼을 협상의 바이블로 삼았다면 사상 최초의 세기적인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의 수준과 내용이 총론적인 모호성과 애매함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1항은 “6자는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6자회담의 목표라는 것을 일치하게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을 포기하며 멀지 않은 시기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였다”이다. 외교적 방법으로 비핵화를 실현하며 북한의 이행을 명기함으로써 합의문의 외형 구조상 특별한 문제는 없다. 문제는 2항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쌍무적 정책들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3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건설 및 200만kW 전력 공급 약속, 에너지 지원 등으로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보상에 관한 것이다. 지뢰밭은 마지막 항에 있다. “6자는 이상의 일치 합의사항들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리행하기 위한 조화로운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은 성명에 서명할 때 1항이 먼저 진행되고 2, 3항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북한은 2항이 우선이거나 최소한 1, 2항이 동급이며 1, 2, 3 항의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나 중요도가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에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먼저 언급됐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마지막 항목에서 단계별 원칙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행동이 일차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묵시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

사령부 예하 포병중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사진:노동신문



결국 미국과 북한은 선(先) 행동조치를 요구하며 샅바싸움을 전개했고, 북한은 다시 무력시위를 감행함으로써 양측의 협상은 휴지조각이 됐다. 북한은 협상 체결 10개월이 안 돼 미국 독립기념일인 2006년 7월 4일 대포동 2호를 발사, 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에서 대포동 2호 1발과 깃대령 851 부대에서 노동 1호와 스커드 미사일 5발을 각각 발사했다. 이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단행해,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행동의 선후 기싸움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향후 6∼8개월 내에 현재 보유한 핵탄두의 60~70%를 미국 또는 제3국에 넘기라는 요구를 했으나 ‘강도 같은 요구’라며 거절당한 것은 여전히 과거부터 지속된 선후 행동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상에 올인했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왜 추후 이견으로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은 합의문에 서명했을까? 협상문을 도출하는 자체만으로 외교관의 능력이 올라간다는 인식을 보유했는가? 아니면 미국의 한 개 주도 안 되는 북한 정도는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걸까? 협상에서 시간과 순서를 명확히 기입해 향후 계약서의 해석을 둘러싼 이견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힐 전 차관보는 2014년에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외교는 결코 전쟁의 연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파들 속에서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집념의 협상가였다. 하지만 1995년 1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협상 당시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상시적으로 접촉하며 협상을 풀어 갔던 힐에게 북한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폐쇄된 체제였다. 그는 북한과 세르비아와는 비교불가라는 사실을 수 년간의 협상 끝에 겨우 파악했다.

최근 콜로라도 덴버 대학 국제관계대학원장으로 있는 힐 전 차관보는 “완전한 비핵화 합의 가능성에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겠다”며 트럼프의 미북 협상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경험 때문일 것이다. 왜 힐 전 차관보와 같은 노련한 외교관이자 협상가조차도 사전에 북한 협상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수많은 협상을 경험하고 나서야 북한이 지구상의 어떤 체제와도 같지 않다고 인식할까?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힐 전 차관보가 수년 간 경험한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fallacy of North Korea)는 사실상 1866년 7월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에 진입한 제너럴셔먼호가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불에 탄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이후 15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시행착오의 역설은 1953년 한국전쟁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준비 부족의 스미스 대대가 북한군에 의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군이 미군의 존재만 봐도 진격을 멈출 것이라는 순진한 판단 아래 스미스 부대를 투입했다. 훗날 유엔군을 지휘하게 되는 리지웨이 장군은 그의 회고록 [한국전쟁]에서 “맥아더는 침공군의 세력을 잘못 판단했으며 인민군 10개 정예사단 앞에 1개 대대를 투입한 것은 맥아더의 지나친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미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군이 미군 참전을 목격하고 소련의 명령에 따라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전체적으로 10일을 벌었다고 평가했다. 엄청난 피해를 입고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과 탐구는 혼선과 혼동이었다.

이러한 오류와 비체계적인 미국의 대응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이패드로 멋진 동영상을 보여주며 비핵화를 설득했다, 비핵화를 하자마자 북한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방 자본, 새로운 철도, 공장과 리조트 등 장밋빛 비전이 포함된 3차원 영상이었다. “그들은 멋진 해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 쪽으로 포를 발사할 때마다 볼 수 있죠. 그렇죠? 저는 전경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멋진 콘도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요?” 트럼프는 첨단 그래픽에 의한 동영상이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개방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도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평양의 협상 상대를 뉴욕의 부동산 개발 전문가로 오판했다. 김정은은 북한에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만 서구 투자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 독이 든 사과를 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확실하다. 그가 스위스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 만으로 개혁·개방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인식은 무지몽매한 것이다. 약 5년간의 베른 체류 기간 동안에 김정은은 1년에 최소 3개월 정도는 각종 행사 참석을 이유로 평양에 체류했다. 특별히 베른 학교 시절에 서구 문화에 충격을 받은 경험도 별무하다. 숙소 이외의 외출은 당시 스위스 북한대사관의 통제를 받았다. 딱히 서방문화를 경험하려는 노력이나 일탈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십대 시절의 보통 청소년들처럼 농구나 게임 정도에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는 “개방을 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을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는 평양의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 연구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몇 주 후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북한 전문가는 물론이고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North Korean Watchers)에게도 공히 해당된다.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경수로 2기를 2003년까지 건설해 주기로 약속한 것은 북한이 그 전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는 갈루치 수석대표 등 외교관들의 과거 발언은 미 외교 당국자들의 솔직하고도 무지한 고백이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북한에 대한 오판의 재연이었다.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이란, 이라크와 북한은 ‘악의 축’ 이라는 발언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 북한과의 협상 진행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북핵 위기를 해결하려는 협상과 압박 사이에서 수사적(修辭的) 혼돈을 거듭했다. ‘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 힘에 의한 압박도 한계를 보였다. 결국 창의적인 대안도 없이 제네바 합의를 덜컹 포기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얻을 국익이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집권기간이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북핵 문제의 정확한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란 구(舊)소련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너지리라는 순박한 기대만을 가지고 은둔의 왕국을 관망한다면 역사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결국 1994년 1차 핵 위기가 발생한 지 23년 만에 재발된 2차 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수준 미달’인 미국의 북한 연구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이제 미국의 북한 정보의 생산 경위와 학문적인 연구 수준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자. 미국의 북한 정보의 산실은 중앙정보국(CIA)이다. CIA의 북한 정보 수집 및 분석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보고서는 필자가 지난 2001년 번역한 [CIA 북한보고서: Kim Il-song‘s North Korea]다. 1970년부터 20년간 CIA에서 극동문제전문가로 일한 헬렌-루이즈 헌터(Helen-Louise Hunter)가 집필했다. 정보기관에서 축척된 자료를 기본으로 작성된 비밀문서였으나 1980년 초 이래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 연방하원 의원의 강한 요청에 따라 비밀 해제된 책이다. 솔라즈 의원은 뉴욕 브루클린이 지역구로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한 바 있다.

21개 분야 북한의 사회학적 분석 시도한 CIA 보고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지난 8월 3일 촬영한 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 사진:연합뉴스



솔라즈 의원은 1980년대 초부터 1993년 의회를 떠날 때까지 윌리엄 케이시 국장 이후 모든 CIA 국장에게 헌터의 기념비적인 연구의 결과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CIA는 업무를 위해서 작성된 보고서들이 비밀로 유지되기를 원했기에 CIA가 이 책의 출간을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CIA가 납득하는 데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솔라즈 의원은 책의 추천사에서 “이제 당분간은 누구도 다시는 북한에 관해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은둔의 왕국의 불가사의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이제 출간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급과 성분을 시작으로 김일성 숭배, 결혼과 가족생활, 교육, 주택 및 보건 의료체계 등 21개 분야에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했다. 이 책은 주로 북한을 방문했던 외교관, 기업인, 운동선수 등과 북한에 있는 친척을 방문한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브리핑 받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북한 인민들의 실제 감정이나 마인드 등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저자인 헌터가 실제로는 한 번도 평양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취약점이다.

미국 학계에서 북한 연구의 독특한 결과물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논쟁적인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2004년 집필한 [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필자가 당시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를 모방해 [김정일 코드]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남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결과는 김정남의 이복동생 김정은이 평양 권력을 승계받았다.

이러한 저자의 일부 빗나간 예상을 제외하면 이 책은 북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북·미 양자 간 갈등의 근원을 구조적,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던 브루스 커밍스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가 집필했다. 북·미 간 갈등의 근원은 한국전쟁이라는 것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깊은 탐구가 전제돼야 하고, 그렇기 위해선 대결이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외에 외교관들의 대북 경험을 정리한 책들이 있지만 일회성 접촉 경험 회고에 그치고 있어 체계적인 지식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북한과 인도에 기만당한 미국의 기술정보력

미국의 인공위성이 획득한 정보를 수신하는 이글비전 시스템 안테나. 북한은 미국의 위성 정찰을 기만하는 작전도 세웠다.



한편, 미국이 생산하는 경쟁력 있는 북한 정보는 기술정보(Technical Intelligence)를 통해 수집된다. 기술정보(TECHINT)는 영상정보(IMINT),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 SIGINT), 징후계층정보(MASINT) 등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최첨단 전략자산 등을 동원하여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각종 통신활동을 감시한다. 주로 북한군의 통신과 평양의 국제전화 통화 등이 대상이 된다. 항공정찰과 위성정찰을 통해 북한군의 이동 등을 체크한다. 미국이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는 영상정보는 해상도 1m급 영상은 군사목표물의 90%까지 판독 가능하고 50㎝와 30㎝는 각각 93%, 96%까지 판독이 가능하다. 사실상 북한군의 지상목표물은 감시가 가능한 수준이다. 북한이 괌에서 날아오는 각종 전략자산에 극도로 민감한 이유다.

정부가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관련 전문매체 [38노스]를 운영하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 연구소(USKI)에 대해 예산지원을 6월부터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가장 큰 이유는 [38노스(38 North)] 때문이다. 사실 [38노스]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끈질긴 스토커’라 할 수 있다. [38노스]는 미국 스페이스 이메이징사(Space Imaging Company)가 판매하는 50㎝ 내외의 민간 위성사진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사전에 수차례 발견해 냈다. 2016년 1월에는 신포항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SLBM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처음 판단했다. [38노스]의 예견대로 그해 3, 4, 7, 8월에 북한은 SLBM을 발사했다. 미국은 NSA 주도 아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에셜론(ECHELON)’이라는 비밀 감청 조직을 결성하여 감청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에는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 미군 비행장으로 알려진 험프레이 캠프에 에셜론과 관련된 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미국 공군기지에서 한반도에 대한 감청 시설이 확충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정보 수집은 다른 대응기술로 차단 내지 방어가 가능하다. 미국은 1974년 최첨단 첩보 위성을 보유하고서도 사전에 인도의 핵실험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인도는 미국 정찰위성이 인도 지역을 통과하면서 감시하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 시간을 피해서 핵실험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전웅, [현대 국가정보학]).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미국의 첩보위성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실시하려는 다양한 징후를 포착했다. 하지만 그러한 징후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기만행위였다. 1998년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도 첩보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에 근거해 제기됐으나 이후 미국 조사팀이 방문해 본 결과 핵시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은 금창리 지하시설 방문을 허용해 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60만t의 식량을 챙겼다. 결국 아무리 최첨단의 첩보 위성이라 할지라도 관찰 및 감시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상대국은 위성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기만책을 구사할 수 있다. 휴민트(Humint) 즉 인간정보에 의해 상호 보완되지 않는 기술정보는 제대로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기술정보의 하드웨어와 인간정보의 소프트웨어간의 균형적인 결합만이 정보의 효능을 배가시킬 수 있다.

휴민트 수집과 함께 미국의 북한 연구에 가장 큰 약점은 현장 접근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특히 폐쇄된 유색 인종 국가에는 과거 모스크바에 파견했던 백인의 외모를 갖는 신문기자, 연구자, 여행객, 상사원 등의 파견이나 체류가 원천 봉쇄돼 있다. 방문자를 통한 디브리핑(debriefing) 방식의 첩보 수집만으로 체계적인 분석은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CIA에 북한 데스크를 설치해 한국계 미국인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다만 정보기관의 분석은 매일 일보(日報) 체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매우 부족하다. 연구소와 대학이 긴밀하게 상호 보완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

6·25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한반도에 파견한 대대급 미 지상군 부대인 스미스 부대.



이제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미국은 ‘북한 스터디(North Korean Studies)’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북한 연구를 과거 소련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던 ‘소련학(Sovietology)’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소련학 연구는 소련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크레믈린 연구(Kremlinology)’로 불리기도 했다. 우드로윌슨센터는 1974년 산하에 캐넌연구소(Kennan Institute)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소련 연구를 전담했다. 미국의 러시아 탐험가인 조지 캐넌(George Kennan)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러시아 연구기관으로 도약하며 다양한 저술 및 현장 접근 사업 등을 수행했다.

현재 미국의 북한 연구는 사회주의 독제체재라는 상식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소나 기관에서 1~2년 근무한 후 갑자기 언론에 나타나 북한 문제 전문가로 활약하는 수준은 이제 지양하자. 워낙 전문가 층이 두텁지 않고 틀려도 아니면 말고 식이기 때문에 경제학 등 여타 분야에서는 도저히 활약할 수 없는 수준의 신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그들의 분석 수준은 역사성이나 논리성 등이 턱없이 부족하며 근거도 별로 없다. 서울에서 생산된 정보가 영어로 전환되며 새로운 정보로 변질되는 패턴은 미국의 북한 협상 실패의 중요한 근거다. 워싱턴 북한 연구자들의 강점은 유창한 미국식 영어 이외에는 특별히 찾아보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북한 연구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무부와 교육부 등 행정부는 대학과 민간의 북한학 연구를 중국,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연구에서 독립시켜 특화된 전문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강좌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와 남한과 북한 연구를 분리해야 한다. 남북한은 동일 민족이지만 언어를 제외하고는 분단 70년 동안 북한은 사회주의와 유일 수령사상 체계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체계와 동일 선상에서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하고 있다. 한반도 연구와 북한연구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연구기관과 공조해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남한의 북한 연구자를 미국에 초청해 연구시키고 미 전문가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기초적인 연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 의회는 ‘Northkoreanology 연구 장려 법안’을 발의하고 예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중국과 일본 연구 수준으로 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연구서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북한 연구에서도 나오는 순간, 핵문제의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반도 사태 진전을 분석하고 향후 효율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데 정확한 로드맵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 남성욱 -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한국북방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북한의 IT산업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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