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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내일은 울지 말자"

부소현 / JTBC LA특파원
부소현 / JTBC LA특파원 

[LA중앙일보] 발행 2018/08/2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8/24 18:26

88세 김병오 할아버지는 70여 년 만에 여동생을 만났다. 단발머리의 여동생은 백발의 할머니가 됐다. 김 할아버지는 무려 5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여동생을 만난 김 할아버지는 헤어지기 전날 "내일 울지 말자"라고 동생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상봉 마지막 날 나란히 앉아 두 손을 꼭 잡은 백발의 남매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상봉을 마친다는 안내 방송에도 미처 동생의 손을 놓지 못하는 오빠에게 북측 동생은 '바라보는 여생 길에 행복 넘친 우리 세상…'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한국시간 20일 남쪽의 이산가족 89명이 2박 3일간 금강산에 머물며 68년 동안 만나지 못한 혈육 197명을 만났다. 분단 이후 21번째 지난 2015년 이후 2년 10개월 만의 상봉이다. 1985년 고향 방문단으로 시작한 이산가족 상봉으로 직접 혈육을 만난 가족 수는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4186가족(1만 9930명)뿐이다.

그간 상봉을 신청한 실향민이 13만 2603명. 이 중 7만 5000여 명이 미처 혈육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실향민은 5만 7000명 정도인데 반 이상이 80대 고령이라 매년 4000여 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살아있는 실향민이라도 혈육을 만날 수 있어야 할 텐데 상봉행사마저 정기적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 어쩌다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 기회를 얻기 힘들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로또 당첨만큼 힘든 행운을 얻어 혈육을 만난다 해도 기쁨은 길지 않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과 북의 가족들이 함께 보낸 시각은 고작 11시간에 불과하다. 만남 이후 재회도 보장받지 못한다.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죽기 전에 그래도 한번은 만났다는 위로로 여생을 사는 수밖에 없다.

1985년 첫 이산가족 상봉행사 후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많이 변했다.

30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술이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생색내기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다.

양측 모두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생사와 주소확인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실향민들의 생각이다. 이산가족 등록자 중 사망자를 제외한 5만7000여 명이 상봉 대상자이지만 건강 문제 등으로 상봉 행사에 갈 수 있는 대상자는 1만 명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니 먼저 생사부터 알고 안부를 주고 받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순서다.

분단 독일은 통일 30여 년 전인 1960년대부터 연금수혜자인 고령 이산가족을 우선 대상으로 정해 동서독 간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편지 전화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동생의 노래를 뒤로하고 남측으로 오는 버스에 올라탄 백발의 오빠는 쉴새 없이 손을 흔드는 동생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보게 되는 가슴 저미는 모습이다.

5만7000명의 이산가족이 혈육을 만나는 아니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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