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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트레일, 각자의 길을 걷다

'좀 많이 무대책이네…' 지난 4월 LA에서미 서부 종주 하이킹 PCT를 준비중인 20대 한인 여성 하이커를 만났다. 그는 지리산 등반이나 장거리 하이킹 경험이 전무했다. 십여 년 전 목포를 시작으로 서울시청까지 700km를 걸었던 나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우격다짐으로 보였다. 군대를 전역한 나조차도 발에 물집이 잡혀 자세가 흐트러지고 한걸음 뗄 때마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통증을 참아야 했다. 폭우 속을 쉬다 걸을 때면 통증이 더 심해져 몸이 예열될 때까지 어금니 물고 걸어야 했다.

지난 주 PCT하이커들을 취재를 하면서 먼저 확인한 것이 무대책 하이커의 소식이었다. 낙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중간에 치아 통증이 심해져 병원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묵묵히 트레일을 걷고 있었다. 노숙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이커들 이야기를 신문지면에 풀어 놓기는 좁았다. 4월 초 중순 비슷한 시기에 멕시코 국경지대를 출발해 걸었지만 정말 한 명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었다. 한 팀으로 걸었던 하이커들조차도 느끼는 바가 다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 토막을 마저 전한다.

# 여성 하이커 K. 오리건주 한 시골마을에 도착해 커피숍 앞에 앉아 몰래 와이파이를 쓰고 있었다. 백인 아저씨가 "너 PCT 하이커지?"라고 물으며 "밥을 먹자, 따라와"라고 했다. 그는 '건강식'이란 점을 강조했다. A씨는 접시 가득 고기와 두부, 샐러드를 먹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싸했다. 알고 보니 교회가 마련한 무료 급식소였던 것이다. 마을을 머무르는 동안 마을 노숙자들은 K씨를 향해 "씨스터"라고 불렀다.



# 30대 중반 신혼여행 부부. 부인 S씨는 남편이 자신의 어리광을 잘 받아 줄 것 같아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남편은 하기 싫은 것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으로 길을 걷다가도 한계치에 다다르면 주저앉고 하이킹을 중단했다. 하지만 맹렬한 폭염 속 사막, 깊고 고요한 산속에서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큰 의지가 됐다. 남편은 요리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었다. 사교성이 좋았다. 히치하이킹을 해준 운전자와 죽이 잘 맞아 하이킹 도중 라스베이거스로 가 호텔에서 묵고 카지노도 했다.

# 여성 하이커 J씨. 눈산이었다. 동행한 하이커들이 물을 뜨러 간 사이 자신은 화장실에 갔다 왔다. 그런데 동행 하이커들이 먼저 길을 떠났다. 그는 뒤를 따라 40분을 걸었다.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이미 되돌아 가기엔 늦은 시간. 오르막길을 선택해 산을 치고 올랐다. 손으로 돌을 붙잡아가며 급경사를 올랐다. 추락할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렸다. 기어이 목적지에 올랐다. 정상에서 본 타인종 하이커들이 "괜찮니? 무슨 일 있었니? 너 설마 여기를 올라왔니?"라고 걱정했다. 그들은 잠시 기다려주겠다며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PCT 2650 마일. 하이커들은 걷는 동안 오지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인과 산속 야영장을 운영하는 한인 등 여러 한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이커들에게 고기 파티도 열어주고 용돈도 쥐어줬다. 병원 치료 등 응급 조치도 도왔다. 인생이라는 트레일을 걷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알기에 보내는 응원이었다. 한편으론 청년을 보며 디아스포라의 노스탤지어도 있었겠고.


황상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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