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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종교가 우리를 실망시킬 때

종교의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종교가 가리키는 달을 봤으면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자꾸 보게 되면
손에 묻은 때만 자꾸 보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도 더 넘은 이야기지만 아직도 나는 그 선배의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나는 하버드에 막 입학해 설렘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과거 종교인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던 난 이제 대학원에서 종교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 무렵, 같은 과 선배 한 명이 그렇게 부풀어 있던 내게 찬물을 끼얹는 조언을 했다.

"만약 종교에 대한 지금과 같은 믿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면 종교학 공부를 당장이라도 그만두는 편이 나아. 그렇지 않으면 공부하면 할수록, 깊이 알면 알수록 그동안 간직했던 종교에 대한 많은 믿음이 그저 네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하나 둘 알 수 있었다. 우선 아무리 새롭고 특별해 보이는 자신의 종교도 그 종교를 낳은 당시 역사와 사상적 배경을 공부하다 보면 그렇게 새롭지도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종교가 아무리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 시대를 초월하는 사상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시대적 관습과 가치로부터 그렇게 벗어나 있지 않다.

또한, 사람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성직자 혹은 종교를 믿고 따르는 신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역사 속에서 공부하게 된다. 오히려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르는지, 민족주의와 결탁해 다른 민족을 박해하는 데 종교가 어떠한 사상적 이론을 제공했는지,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모든 종교는 처음엔 가난하고 힘없는 이단 집단의 대우를 받으며 시작한다. 그러다 점점 조직화되고 힘이 생기면서 대중화에 성공하면 기존 사회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초창기 가르침도 어느 시기부터는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르침으로 재해석된다. 그러면서 종교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마는데, 종교 집단은 그래도 여타 다른 집단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알고 보면 종교 역사에 무지했던 나의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깨닫는 시기가 찾아온다.

최근 신문에서 볼 수 있던 조계종단 사태나 교회 세습 문제,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신부들로부터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성적 학대를 받았고 이 사실을 가톨릭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결코 놀랍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자기 종교를 신뢰하는 마음, 믿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종교에 실망해 종교를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 종교에 대한 믿음이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 숙제로 남는다.

내 경우에는 어느 순간부터 종교의 가르침과 사람을 분리해 종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믿고 따르는 것은 종교의 좋은 정신과 수행 전통, 도덕적 가르침과 하나님 혹은 깨달음으로 대변되는 초월성을 말하는 것이지 성직자나 신자들의 행동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모범을 먼저 잘 보여준다면 감사하고도 존경 받아야 할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 각자의 문제이지 종교 자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일이 아니다.

가르침대로 잘 살고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도 사실 내 몫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할 일이고, 불자의 경우 인과법대로 각자의 과보를 미래에 받게 될 것이다. 더불어 종교인에 대한 이해 역시 종교인이 되었다고 바로 도덕적으로 완성된 존재가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완성의 가르침을 향해 걸어가는, 나와 같은 미완성의 죄인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작은 존경심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가르침을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지 도덕적 완성을 이미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종교의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이럴 때일수록 종교가 가리키는 달을 봤으면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자꾸만 보게 되면 손에 묻은 때만 보게 될 것이다.


혜민 스님 /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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