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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주사, 모기에게 배웠다…블루 이코노미가 뜬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1 14:01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천권필의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도토리거위벌레. [사진 BRIC]

역대급 폭염을 기록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산길에서 도토리나무 근처에 가지가 잘려 떨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람에 떨어져 나간 것일까요?

아닙니다. 범인은 바로 숲속의 나무꾼으로 불리는 ‘도토리거위벌레’입니다.

도토리에 구멍을 내고 있는 도토리거위벌레 암컷. [사진 국립생태원]

딱정벌레목에 속한 도토리거위벌레는 몸길이가 9~10㎜로 아주 작은 곤충입니다. 거위처럼 긴 주둥이를 가진 게 특징이죠.

도토리거위벌레는 이 주둥이를 이용해 딱딱한 도토리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는 가지를 잘라서 땅으로 떨어뜨립니다. 도토리에서 부화한 애벌레들은 도토리를 양분 삼아 성충이 됩니다. 그들만의 생존 방식인 셈이죠.

도토리거위벌레 알을 품은 도토리 내부. [사진 국립생태원]

도토리에 뚫은 구멍을 보면 입구는 좁지만, 그 속은 호리병처럼 넓습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주둥이에 한 쌍의 큰 턱을 가진데, 사슴뿔처럼 생긴 턱에는 다양한 방향으로 날이 붙어 있습니다. 주둥이로 구멍을 뚫은 뒤에 큰 턱을 이용해 구멍 안을 넓히는 것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은 이런 도토리거위벌레의 행동 특성에 주목했습니다. 한국기계연구원과 공동연구 끝에 지난해 말에 도토리거위벌레 큰 턱의 생태 동작을 모방한 ‘확공형 드릴’을 개발했습니다. 현재 특허청의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보통 곤충들은 자르거나 혹은 구멍을 뚫거나 한 가지 운동만 하는 데 도토리거위벌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특이한 생태 행동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점에 착안해 생물 모방 연구를 시작했죠. -이은옥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특정 조직 제거하는 수술 장비로 활용”

도토리거위벌레를 모방해 개발한 확공형 드릴. [사진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개발한 ‘확공형 드릴’은 일반적인 드릴의 회전 모터에 구멍을 뚫는 칼날 길이를 조절하는 수평 방향의 모터를 추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변물에 적은 영향을 주면서 제거하고 싶은 부분을 깔끔하게 절삭할 수 있어 향후 여러 분야에 활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확공형 드릴 설계도. [사진 국립생태원]

개발에 참여한 한국기계연구원 정영도 박사는 “들어가는 입구보다 내부를 넓게 팔 수 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기술을 응용하면 특정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 쓰는 의료용 장비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학, 자연에서 영감을 얻다

도꼬마리(위)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벨크로 테이프. [중앙포토]

도토리거위벌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확공형 드릴은 이른바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 청색 경제)’로 불리는 생물 모방 연구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생물 모방 연구란 생물의 기본 구조와 원리, 혹은 생태적인 특성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 중에서도 생물 모방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꽤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흔히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입니다.

벨크로는 20세기 초에 스위스의 조르주 도메스트랄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개의 털에 도꼬마리라는 식물이 잔뜩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메스트랄은 섬유에 잘 달라붙는 도꼬마리의 갈고리를 모방해 벨크로를 만들었습니다. 벨크로는 지퍼나 단추를 대체하는 혁신적인 성과물로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물총새(위)의 부리를 모방해 디자인한 신칸센. [중앙포토]

일본의 고속열차인 신칸센 중 간사이 지방을 다니는 ‘신칸센 500계’는 물총새의 부리처럼 열차의 앞부분을 길고 뾰족하게 디자인했습니다.

물총새의 길고 뾰족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는 저항을 최소화해 물속에서도 빠르게 먹이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데 이 점에 착안한 것이죠.

실제로 물총새의 디자인을 적용했더니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었고요. 15%가량 더 적은 에너지를 쓰고도 10%나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됐습니다.

모기 침 응용해 무통 주사 개발

모기의 침을 흉내내서 개발한 무통 주삿바늘. [중앙포토, Terumo]

일본의 한 의료기기 회사는 아프지 않은 주사(무통 주사)를 개발하기 위해 모기에 주목했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고 피를 빨아먹는 모기의 침을 흉내 내서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주삿바늘을 개발했습니다. 이 주삿바늘의 끝은 지름이 0.2㎜로 기존 주삿바늘보다 20%나 가늘었습니다.

이 무통 주사는 2005년 출시 이후 대박을 터뜨렸고, 특히 날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2025년까지 1조 달러 시장”

수면에서 점프하는 소금쟁이 로봇(금색)과 실제 소금쟁이의 비교 모습. [사진 서울대 제공=연합뉴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 모방 연구의 가치가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죠.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는 생물 모방 연구를 미래 기술계의 대안적 방안으로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2025년까지 생물모방 관련 제품 및 서비스 시장 규모가 약 3500억 달러(391조 원)가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순수 제품과 서비스 시장 외에도 각종 자원 고갈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효과까지 계산한 수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1조 달러(111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생물 모방 연구의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는데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연구팀은 2015년 소금쟁이처럼 물 위에서 점프할 수 있는 초경량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서울대와 LG가 손을 잡고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돌기를 모방해 소음과 소비전력을 줄인 실외기 팬을 개발한 것도 생물 모방 연구의 한 사례입니다.

“생물 모방, 지속가능한 아이디어 제공”

파랑새가 분주하게 먹이를 나르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립생태원은 현재 파랑새를 대상으로 두 번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세포가 아닌 빛의 반사를 통해 색을 내는 파랑새의 깃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연구진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빛의 반사만으로도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나노 소프트 소재를 개발하는 데 파랑새 연구가 도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경상북도·전라남도와 공동으로 다음 달 2일에 국제청색경제포럼을 여는 등 제2, 제3의 도토리거위벌레를 찾기 위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은옥 연구원은 “도토리거위벌레는 산림청에서 해충으로 분류되지만, 생물학적 특징을 잘 활용한다면 인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블루 이코노미의 좋은 사례”라며 “생태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할수록 환경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이로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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