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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읽기] 어머니, 헤어졌던 그림도 안아주세요

"광주비엔날레 온 북한미술
북한 비주류 그림의 재발견

이산가족상봉 이은 문화상봉
마음의 눈 열면 더 잘 보여"

"어머니, 막내가 왔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려 60여 년을 기다렸다. 아들 목덜미를 끌어당기는 어머니 눈에는 꿈에도 못 잊은 갓난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지난 달 20일 금강산호텔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던 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는 상봉의 순간을 꼭 닮은 그림이 도착했다. 7일 개막된 제12회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에 선보일 22점 중 하나다. 북측 상봉자 못지않게 남측 사람들을 보고 싶었던 북의 그림이 먼 길을 우회해 우리 곁에 왔다.

"비감한 감정을 숨길 수 없네요. 북한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 최초 전시라는 맥락은 제쳐놓죠. 단절되어 있었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한반도 미술의 현현한 표징에 빛을 쏘이는 순간입니다. 분단 73년이란 시간의 응축이 찰나에 펼쳐지는 이날을 위해 그 험난한 8년에 제 삶을 던져 넣어야 했던 모양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어들었던 이유는 '이거다' 하는 확신을 종교처럼 가슴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문범강(64) 워싱턴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는 상봉장의 어머니처럼 목이 메었다. 2010년부터 아홉 차례 평양을 드나들며 북의 미술 현장과 작가들을 연구한 문 교수는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아 그가 통찰한 조선화(朝鮮畵)의 진수를 제대로 소개한다. 3월에 펴낸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서울셀렉션)로 이미 독보적인 북한미술 전문가라는 평판을 얻은 참이다. 북의 미술이 '사회주의 사실주의'라는 해묵은 선입견과 편협한 테두리에 갇혀있음을 깨버린 이 책에서 그는 조선화를 '사람 냄새 물씬한 기막힌 신파'라 풀이했다.

"와서 보시면 긴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창성과 깊이를 지닌 화풍입니다. 집체화와 주제화는 물론이고 산수화와 문인화도 조선화라는 큰 틀에서 꿈틀거리고 있어요. 유럽에 북한 그림 컬렉터가 많은 이유입니다. 옛 소련이 망하고 중국이 변한 뒤 사회주의 미술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에 수집하는 거죠. 그런 미술 토양을 키우게 된 원인을 저는 폐쇄적 체제와 멈춰진 시간에서 오로지 한 구멍을 뚫고 내려간 우리식 자긍의 사실성으로 이해합니다."



집체화(集體畵) 6점은 내용이나 기법에서 출품작 중 최고라 할 만하다. 집체화는 1인 이상의 작가가 모여 한 작품을 완성하는 다작가 일작품(多作家 一作品) 형태인데 자아를 버리고, 착(着)이 없으며, 전체를 위해 한다는 마음이 뭉쳐 일궈낸 조선 화가들의 자부심 서린 장르다.

문 교수는 홍명철·서광철·김혁철·김일경 4명 화가가 함께 그린 역사기록화 '평양성 싸움'을 첫째로 추천했다. 임진왜란 현장에 있는 듯 시공을 뛰어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표류하는 한국 어부들을 북의 어부들이 구출하는 장면을 재현한 '가진의 용사들'은 낭만주의의 격정적 요소를 극적으로 끌어올린 대작이다. 윤건·왕광국 등 7명이 힘을 모아 그린 '청년 돌격대'는 바위산을 깨는 젊은이의 함성이 귓가에 쟁쟁할 지경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작품 창작에 밤을 패면서 모두들 북받친 감정에 휩싸여 자발적으로 매진했다는 기록이 공감된다.

또 하나의 장르 주제화(主題畵)는 인민의 생활상과 노동의 순수한 기쁨 등을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표현한다. 사회주의 체제 속에 펼쳐지는 모든 인간 활동을 사진처럼 포착했다. 먹을 쓰면서도 색채를 과감하게 도입해 유화 못지않은 입체감을 살린 점이 눈에 띈다. 동양화의 특이한 양상이란 측면에서 연구거리다.

산수화와 문인화는 남측에 더 낯익은 장르다. 북에서는 주류가 못 되므로 위축될 여지가 크지만 일관 리석호(1904~1971)의 선비화와 담채화, 운봉 리재현(76)의 문인화는 자유분방한 기운과 어리숙한 난만함으로 빛난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을 저술한 운봉은 문인화를 그리면서 그 여백에 미술사를 기록해 사료적 가치도 크다.

문 교수는 "편견의 눈을 감고 감성의 눈을 떠 이 전시를 보시라"고 부탁했다. 광주 전시가 끝나면 22점을 싸안고 와 서울에서도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더 많은 이들이 마음을 열고 이들 그림과 만나기를 그는 바랐다. 이산가족상봉만이 상봉이 아니다. 떨어져 살며 볼 수 없었던 그림의 상봉, 문화의 만남이 그리운 계절이다.


정재숙 / 문화재청장·전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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