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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정점에서 피고인으로…대통령들은 '왜'?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8 00:45

'권력의 정점'에서 '피고인'으로…

지난 6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연합뉴스]

한 때는 대통령이었지만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피고인’이 됐다. 일부는 이미 형이 확정돼 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전직 대통령들의 얘기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한국에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검찰이 지난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350억원대 다스 자금 횡령과 110억원대 뇌물 수수 등 혐의에 대해 검찰이 판단한 ‘죗값’이었다. 검찰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부패 사건으로 엄정한 법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며 이렇게 구형했다. 징역 외에도 벌금 150억원과 추징금 111억4천131만여원도 선고해 달라고 검찰은 요청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17가지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다스 횡령과 뇌물 수수 이외에도 15가지의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검찰이 "이 사건은 최고 권력자였던 제17대 대통령의 총체적 비리 행각이 낱낱이 드러난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피고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위임받은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남용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최초의 '부녀 대통령'에게 선고된 '징역 25년'

헌정 사상 처음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심에서 징역 25년으로 형량이 늘었다. [연합뉴스]

이 전 대통령의 후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늘었다.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금이 1심과 달리 뇌물로 인정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을 향해 “국민에게 심각한 상실감과 함께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안겼다”고 질타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이자 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뒤 범죄자 신세로 전락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역대 대통령들의 수난사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 팬덤'인 '노사모'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검찰 수사를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재단]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정치 팬덤’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2008년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하며 수면 위에 올랐다. 검찰은 2008년 12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원을 빌려준 내용이 담겨 있는 차용증을 확보하며 수사를 본격 확대했다.

이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을 거쳐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수십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퇴임 대통령의 수난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남았다.

'치욕'과 '시해', 장기 집권의 최후

대한민국 1,2,3대 대통령, 이승만.

이전 대통령들 역시 치욕스런 모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다 4·19 혁명으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18년간 장기집권했지만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됐다. 경제개발과 독재·인권탄압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육사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12.12 군부 쿠데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항쟁 무력진압' 등 총칼을 앞세워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후임인 김영삼 정권 시절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재임기간 중 아들의 '구속'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말 아들인 홍업씨와 홍걸씨가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났다. 사진은 2001년 2월 14일 남북공동선언문 서명에 앞서 손을 맞잡은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군사정권 이후 민주화 시대를 연 ‘양김(兩金)’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의 아들이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아버지 재임 중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데 이어 퇴임 후인 2004년엔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차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차남인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에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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