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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역사를 쓴다] "우리는 존경 받는 민족이 돼야 합니다" 남완희 팰팍상공회의소 초대회장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9/22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18/09/21 21:44

팰리세이즈파크 30년 역사 지킨 원로
주류사회 봉사하는 한인들 역할 중요
11월 선거, 한인시장 당선되길 기대

지난 1989년 그랜드가구점을 오픈하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팰팍에서 보낸 남완희 팰팍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은 한인들이 주류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쳐 타민족들로부터 존경 받는 민족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지난 1989년 그랜드가구점을 오픈하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팰팍에서 보낸 남완희 팰팍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은 한인들이 주류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쳐 타민족들로부터 존경 받는 민족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는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일대에서 가장 한인 주민 비율이 높은 곳이다. 2만여 명 주민들 중 절반 정도가 한인으로, 이는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지역들을 포함해 전 미국에서 한인 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타운이다.

팰팍 타운에 한인들이 들어와 주민으로 또는 상인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이민사에 기록될 만한 여러 가지 일도 발생했다.

남완희 팰팍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은 팰팍에 한인들이 들어오던 초기부터 중심가인 브로드애브뉴에 그랜드가구점을 내고 역사의 현장을 지켜 본 한인사회 원로다. 남 회장은 자신이 팰팍에 정착하던 과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본토박이 서울 사람인데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67년 미국에 유학 왔습니다. NYU에서 영어공부를 한 다음에 롱아일랜드 항공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취업을 했는데 1974년에 유류파동이 나는 바람에 해고를 당해 가구사업을 시작했고 1989년에 뉴저지로 와서 팰팍 브로드애브뉴 중심가에 그랜드가구점을 오픈했습니다."

남 회장이 팰팍에 처음 올 때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한인 업소는 몇 개 안됐고, 빈 곳도 많았다. 남 회장이 가구점을 시작하자 곧 이어 몇 개 식당이 문을 열었고 노래방 등이 들어섰다. 들어온 한인들은 이민자와 유학생도 있었지만 지상사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인들이 들어오자 주로 이탈리아인들인 기존 주민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타운에서 한인이 들어오는 걸 되게 싫어했습니다. '김치 고 홈(Kimchi Go Home)'이라고 욕하고, 돌멩이를 종이에 싸서 한인들 집이나 가게에 던져 유리창을 깨기도 했습니다. 한인들 중에 일부는 거리를 지나다니다 아이들한테 썩은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인들은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불안하고 공포에 떨었다. 한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벌어지자 남 회장은 타운 정부와 담판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 업소 주인들이 겁이 나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때는 상인번영회도 없고 한인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타운을 찾아가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당신들하고 대화하고 싶다고 했죠. 한식당에 시의원과 경찰서장, 시장 등 10여 명이 모이더군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우리 한인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매일 밤 공포에 떤다. 치안이 정말 나쁘다. 당신들이 책임져라. 만약 개선이 안되면 뉴스 미디어에 모든 사건에 대해 밝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미안하다, 일 주일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정확하게 일 주일 후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거라고 합디다. 그리고는 공포에 떠는 일이 없이 조용해졌습니다."

이후 한인 상인들은 타운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팰팍상공회의소를 창립하고 남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 때가 1990년이다. 그러나 한인상공회의소가 만들어지고 한인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타운 정부와의 대립은 협력과 상생 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한인 상인들이 상공회의소를 통해 뭉치면서 일부 노래방, 술집 업주들이 타운 정부에 '타운 내 업소를 24시간 오픈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타운 정부와 주민들은 여기는 뉴욕시가 아니고 거주지역이고 업소 옆에 가정집도 있어 24시간 오픈은 못하고 새벽 3시까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인 상인들이 그 말을 안 듣고 타운하고 법정소송이 붙어서 법원까지 갔습니다. 나는 타운 편을 들며 그러면 안 된다, 서로 존경 받는 민족으로 서로 돕고 살아야 된다. 소수민족으로 타운 정부를 이기기 어렵고, 기독교인도 많은데 24시간 놀고 그러면 다음날 일은 어떻게 하냐 하면서 말렸죠. 그랬더니 나보고 미국사람들 앞잡이네 하면서 비난을 했습니다."

한인 상인들과 타운 정부의 싸움은 계속 악화돼 결국은 타운홀 앞에서 한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생겼다. 업소 업무시간 연장과 관련된 분쟁이 나중에는 인종차별이라는 방향으로 전개가 된 것이다.

"내가 소송하지 말라고 했는데, 해서 결국 지게 되고 나중에는 자기들 비용과 상대 소송비용까지 부담하게 됐습니다 그걸 또 안 내서 법원 셰리프들이 업소 앞에 문을 못 열게 경고장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억울하다며 한국의 운동권 데모하듯이 타운홀 앞에서 데모를 했습니다. 타운 경찰서는 버겐카운티 경찰국에 보고하고 연방수사국(FBI)에도 보고해서 경관들이 출동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내가 타운 측에 한인사회와 화해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인 경관과 공무원을 쓰라고 권고했습니다. 타운 정부는 이런 요구를 다 들어줬고 그 다음에는 모두 상부상조하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남 회장은 이런 갈등 과정을 겪은 것을 토대로 앞으로는 한인사회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인이 시장이 됐으면 하는 기대감을 밝혔다. 얼마 전 타운 민주당 시장후보 예비선거에서 한인 후보인 크리스 정이 승리했는데 올해 11월 6일 본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는 만큼 여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만약 시장에 당선되면 한인들 모두가 합심해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회장은 "크리스 정 외에도 공화당 시의원 후보로 버겐카운티 유산법원 판사를 지낸 김재연 변호사가 나오는데 앞으로 이런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많이 시의원, 시장, 주 상.하원, 연방 상.하원에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 차세대 인재들이 미 주류사회에 들어가 열심히 봉사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인들 모두가 존경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 회장은 이러한 봉사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들려준다.

"제가 팰팍에서 지난 25년 동안 타운 개발위원회 위원으로 봉사했습니다. 타운 내에서 건물 짓거나 개발하는 일에 자문하는 일로 다 함께 협조하는 겁니다. 7명 위원 중 한인은 나 한 명이고 한 달에 한 두 번 회의에 나가는데 솔직히 배고픈 적이 많습니다. 회의는 오후 7시에 시작해서 10시, 11시까지 계속되는데 지치기도 하고 배도 고픈데 그래도 내가 앉아 있으니까 한인들 이야기 나오면 위원들 모두 조심합니다. 한인들이 무시를 안 당하죠. 이렇게 눈에 안 보이는 곳곳에서 많은 한인 젊은 인재들이 타운이나 주민들의 발전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 자연히 우리 한인들이 존경 받는 민족이 되는 겁니다."

남 회장은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자신을 비롯해 한인사회 원로로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주류사회로 나가는 2세들을 도와주고 뒷받침해주는 게 나이 든 원로들의 일입니다. 원로들은 2세, 3세들의 성공을 위해 투자해야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주류사회에 들어가 봉사하고 활동해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팰팍에 와서 30년 가까이 있었는데 제가 갖고 있는 꿈은 하나입니다. 우리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노력해서 타민족들로부터 존경 받는 민족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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