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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끈기 두 다리로 산과 사업 올랐다…'에베레스트 가방' 박병철 회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9/24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9/23 12:59

절박함은 사업의 큰 자산
10대 고교시절 '무전여행'
30대 빈털터리에 '용기를'

박병철 회장이 에베레스트 사옥에서 지난 삶과 사업의 우여곡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가방'에 가족 사진을 넣고 있다고 했다. 김상진 기자

박병철 회장이 에베레스트 사옥에서 지난 삶과 사업의 우여곡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가방'에 가족 사진을 넣고 있다고 했다. 김상진 기자

LA다운타운 샌타페 거리에는 세계 가방업계의 큰 획을 그은 '에베레스트' 사옥이 있다. 회색빛 다운타운에서 눈에 확 띄는, 흰 2층 건물이다. 마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의 새하얀 만년설을 연상시킨다. 사옥에 들어선 후 박병철 회장 사무실을 찾다가 '길을 잃었다'. 13만 제곱 피트에 달하는 드넓은 공간. 가방이 잔뜩 들어있는 커다란 짐들이 빼곡히 있는 사이사이 미로를 걷자니 끝이 없는 거 같았다. '후~ 에베레스트 등정인가'. 에베레스트가 만든 제품은 주문자 생산방식 제품까지 합치면 월 판매량이 100만여 개를 넘는다. 대형 체인점을 포함해 아마존 등 온라인서, 또 전세계 가방판매 업소에는 에베레스트가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남 양산 출신(1948년)으로 부산에서 자란 박 회장은 YS와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인 경남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외국어대 무역학과(67학번)에 들어갔다. "막판에 공부를 좀 게을리하셨나요?"하자, 빙긋 웃으며 "고 2 때부터 속된 말로 놀았습니다"고 했다.

소년 병철은 친구 2명과 함께 여름방학 때 여행을 떠났다. 3명이 돈을 모아 1만 원을 들고 세상과 맞부딪혔다. 불국사와 해인사를 목적지로 경상도 일대를 떠돌아다녔다. 즐거웠다. 그러나 세상의 돈은 항상 떨어지게 마련이다. 빈털터리가 됐다. 나름 있는 집 자식들이었던 병철과 친구들은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가난 만한 선생은 없다. 몇 끼를 굶자 넉살과 뻔뻔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동네에서 잘사는 집에 찾아가 배고프다며 밥 한끼를 청했다. 재워달라고 했다. 아줌마들이 많은 미장원에 찾아가 돈을 '구걸'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행색이 나쁘지 않았던 병철과 친구들은 그렇게 '동네 인심'과 '사춘기 소년의 매력'으로 무전여행을 이어나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부끄러워서 세 명 모두 아무 말도 못하다가, 정말 배가 고프니까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81년 빈털터리로 미국에 와서 길거리 행상으로 "가방 사세요"를 외치며 거대한 사업을 일군 '뿌리'는, 수십 년 전 "밥 주세요, 재워 주세요, 돈 좀 주세요"라고 외친 그 절박함의 연장선이었으리라.

대뜸 물었다. "에베레스트 산 높이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8-8-4-8 미터!"

어라, 바로 답이 나온다. 당연히 머뭇거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제 회사 이름인데요라고 했다. 올라는 가봤느냐고 묻자, 5000미터 인근 베이스캠프까지 갔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산악부 출신이다.

"산을 오를 때는 시작 전 워밍업과 막판 다 와서 끝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출발이 좋으면 일단 중간 단계는 굴러가죠. 참, 중요한 것은 돌아설 때는 과감히 돌아서야 한다는 겁니다. 괜히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가자고 하는 것은 파국을 불러올 때가 많죠. 결국 애초에 장기적 플랜을 잘 잡고, 중간 중간 계획을 점검하고, 따져보고, 수정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대학 졸업 후 1970년대 중반 일본의 미쓰이물산 서울지점, 무역회사 (주)삼화 등에서 일했고, 주식 투자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쌓았다.

주로 신주 청약과 건설주를 사고 팔았는데 당시는 중동 특수가 있을 때라서 큰 돈을 모았다. 20대 중반 새파란 젊은이가 운전사 있는 고급 차를 타고다녔다.

"운전기사가 당시 갓 결혼한 아내한테 내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했어요. 아시죠? 젊은 사내놈한테는 영…. 결국 그때 운전기사를 해고하고 운전을 배웠어요. 내 마음대로 다니려고(웃음). 그런데 그때 운전을 안 배웠으면 큰 일 날 뻔했어요. 갓 이민와 운전이 삶의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1979년 10·26사태, 12·12사태가 터지면서 투자했던 주식이 폭락해 전 재산을 날렸다. 또 빈털터리. 친구인 현 금호전기 박영구 회장의 도움으로 제주도에서 생활하게 됐다. 친구는 매달 50만 원을 보내줬다. 허탈한 패배자의 심정으로 저녁마다 클럽 비슷한 데서 술을 마셔댔다. 한 번은 경찰서에 끌려갔다. 인근 주민이 간첩 신고를 한 것이다. 하는 일도 없는 젊은 놈이 어떻게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느냐며.

그렇게 세월을 죽이고 있다가 33살 때 주재원 비자로 미국에 왔다. 대기업이었던 미쓰이물산, 삼화무역 등의 경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LA에 내린 날은 추석을 일주일 여 앞둔 9월 3일. 당장 한인타운 내 모텔에서 아내와 3살, 1살 아들 등 네 식구가 미국살이를 시작했다.

"추석날 모텔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올렸습니다. 당시 돈도 없고 비싼 국제전화비였지만,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도리는 하려고 했죠."

미국서 첫 일은 지금 '타겟' 쇼핑몰이 들어선 버질과 6가 모퉁이의 햄버거 집이었다. 접시닦이 등 허드렛일을 했다. 당시 주인은 체크캐시업도 했는데, 여기저기 심부름을 하러 다녀야 했다. 한국에서 운전을 안 배웠더라면 당장 하루살이가 힘들 뻔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하니 내 차를 몰다 해고된 운전기사에게 고맙더군요. 나를 '감시'하지 않았더라면, 난 운전기사를 둔 채 운전을 못 배웠을 텐데 말이죠. 참 인생이란…."

한국에서 다녔던 무역회사에서 가방 재고를 팔아보라는 권유로 가방 행상에 나섰다. 가방을 공중에다 던지면서 'Save Money'라고 크게 외치며 시선을 끌었다. 더운 LA날씨에 온몸이 땀에 젖도록 열심히 일했다. 몇 시간 뒤에는 팔뚝 살갗에 소금이 생겨나서 그걸 먹기도 했단다. 그래서 박 회장은 '땀의 의미'를 머릿속이 아닌 '맛'으로 느낀다. 가방을 여러 스왑밋에서도 팔고, 멀리 샌호세로도 올라갔다. 뜻밖에 장사가 너무 잘됐다.

젊은 날부터 좋아했던 술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맥주 한두 캔, 좀 많이 벌었을 때는 6팩을 집에 사가지고 와서 마셨어요. 누구 집에 가서 혹시 독한 술이 있으면 어떻게든 다 마시곤 했죠. 그래서 제가 지금도 술 인심은 후한 편입니다."

이듬해 82년 3월에 에베레스트 회사를 설립했다. 스왑밋, 소매상들에게 가방을 공급했고 1985년 한국에서 가방을 수입해 에베레스트 브랜드를 달고 회사 덩치를 키웠다. 그렇게 단단한 밑바닥을 다진 후인 97년 허리춤에 차는 작은 가방(페니백)을 개발, 대 히트를 치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자수성가한 부자에게는 꼭 '쫀쫀한 버릇' 같은 게 있곤 한다. 박 회장은 집이나 회사로 오는 우편 봉투 안에 반송 봉투가 들어있으면, 그걸 빼내 1불짜리, 5불짜리, 10불짜리 모으는 봉투로 재활용한다. 또 젊은 날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서 큰 돈을 휙휙 꺼내곤 하던 버릇은 이제 액수별로 차곡차곡 보관한다. 주변 정리도 확실하다. 인터뷰 중 흐트러진 의자나 물품은 치우고, 청소하고, 제자리에 반듯이 갖다 놓는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데, '세르파(등정 안내자)'는 누구였냐고 물었다. "아내였습니다. 부잣집 딸이었던 아내는 미국에 처음 와 고생할 때, 세탁기 동전이 아까워 빨래판으로 옷을 빨았어요…."

갑자기 그가 울었다. 5분여간 인터뷰가 중지됐다.

"자, 회장님! 회장님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가방 부자'에게 가방의 의미를 물었다. '가족 사진'이라고 했다. 그게 다냐고 물었다.

"하나 더 있네요. 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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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월드옥타' 회장 출마

오랜 경륜·확실한 목표
2017년~18년 5월 사이에
471명 회원에 74억 보조


박병철 회장은 내달 10월 29일부터 11월2일까지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제20대 월드옥타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박 회장은 지난 2014년부터 18기와 19기 월드옥타 이사장을 지내왔다.

월드옥타는 박 회장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한다. 박 회장의 도미 시간인 1981년 창립된 월드옥타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무역증진,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기 위해 해외한인경제인들이 결성한 단체다. 현재 74개국 146개 지회를 구축하고 있다. 정회원은 7000여 명, 차세대 회원 2만여 명.

박 회장은 지난 9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가주경제인협회장, 남가주 무역협회회장, LA옥타 회장에 월드옥타 이사장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말 그대로 '무역맨'이다. 이런 그가 '세계한인무역협회(OKTA)'의 회장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간 그는 중소기업의 외국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국외 지사화 사업, 수출친구맺기 지원사업, 중소기업 수출마케팅 지원사업 등에 적극 나서왔다. 특히 차세대 육성 사업으로 창업무역스쿨, 차세대 리더스 콘퍼런스, 글로벌 취업지원사업, 글로벌 창업지원사업 등 미래의 역군 발굴에 힘써 왔다. 이러한 오랜 경륜과 확실한 목표가 월드옥타 회장으로서 자격을 가늠케 한다.

"월드옥타의 출범과 제가 미국에 와서 사업을 시작한 때(81년)가 같고, 경남고 20기인 제가 월드옥타 20대 회장에 나가는 것도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선거가 열리는 창원은 제가 군복무(39사단)를 한 곳이기도 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월드옥타 이사장으로 있던 2017년부터 2018년 5월까지 471명의 회원에게 74억 원의 기금을 보조했다. 박 회장은 "2017년 예산 100억 원 중 절반에 달하는 49억 원을, 올해도 5월까지 이미 25억 원을 회원들의 활동 보조금으로 지원했다"며 "회장이 되면 예산과 지원금을 더욱 늘려 회원들의 활동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저는 원칙론자입니다. 회원으로 21년간 있으면서 옥타와 대한민국 경제가 잘 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했고 경험했어요. 제 인생의 첫발은 무역맨이었고 끝도 무역맨입니다. 회원들이 잘 돼야, 옥타가 잘 되는 것이고, 그것이 대한민국과 전세계 한인상권이 우뚝 일어서는 길입니다."
내달 월드옥타 회장에 출마하는 박병철 에베레스트 회장.  김상진 기자

내달 월드옥타 회장에 출마하는 박병철 에베레스트 회장.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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