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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계곡물이 산의 땀이라면

황상호 / 사회부 기자
황상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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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8/10/09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8/10/08 15:31

도시가 깨어나기 전 운전을 하는 것이 좋다. 이른 새벽 차가운 바다 조선소로 일을 나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나고, 강원도 화천서 군복무하던 시절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얼음장 같던 산 속에서 피우던 담배가 떠오르기도 해서다. 마치 중력마저 사라진 것 같은 고요 속 짜르르 소리 내며 타들어 가던 담배소리는 울적한 마음의 심지를 건드리곤 했다.

아내에게 등 떠밀려 격주마다 가는 곳은 자연온천이다. 얼마 전 2시간쯤 북쪽으로 달려 샌타바버라 인근 가비오타 자연온천을 찾았다. 무인함에 2달러 주차료를 내고 30분 비탈길을 올랐다. 녹음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계곡물 쪼르르 흐르는 소리가 났다. 길을 벗어나 좁다란 계곡에 손을 담갔다. 이마에 손을 올린 듯 미열이 느껴졌다. 산에는 바닷바람이 바삐 들고 나가 물안개가 춤췄다.

야자수 아래 온천탕 두 개가 있었다. 흐르는 물을 돌로 쌓아 가둬둔 형태였다. 우유를 풀어 놓은 듯 잿빛 유황 물이 제법 그럴싸했다. 위 탕은 보다 맑아 돌에 가라앉은 흙먼지가 보였다. 기포가 바닥에서 포르르 올라오고 온기가 주변을 감쌌다. 다만, 살짝 풍기는 진흙 썩는 냄새는 참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적응된다. 쭈뼛쭈뼛, 엉거주춤 입수.

초행길인 촌놈 아시안이란 것이 금세 티가 났던지 먼저 있던 히스패닉 여성이 안내를 해줬다. "한 시간쯤 더 걸어 올라가면 꽤 멋진 풍경이 나와요. 유명한 산행길이랍니다. 이름 모를 꽃들도 있어요." 여성은 그곳이 고향이라 자주 왔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하고 친구들과 목욕을 하던 사랑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십여 년 전 혼자 타지로 나가 살아야했고 최근에는 플로리다에서 일하다 몰아닥친 허리케인을 피해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성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화상 통화하며 친구들에게 귀향을 알렸다.

얼마 안가 샌타바버라에 사는 가족 3명이 올라왔다. 할머니는 오자마자 욕조 청소용 솔을 꺼내 온천 바닥을 닦았다. 할머니는 "사람이 엄청 많이 오거든.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네다섯 번 와"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내 온천 물이 뼈에 좋다고 몸을 녹이더니 진흙을 얼굴에 발랐다. "하~" 뜨거운 물에 들어간 아저씨의 탄식 소리는 여는 한국 동네 목욕탕과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일회용 컵에 포도주를 따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산이 품은 따뜻한 샘에 몸을 담근다. 녹인다. 말린다. 나무가 뱉어낸 계곡물이 산의 땀이라면 온천은 산이라는 거대한 육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은밀한 그 무엇이다. 뜨거우며 친밀하고 때로는 야하다.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 자연온천의 절반은 남녀노소 홀딱 벗고 자연을 즐기는 것을 허하고 있다. 쫄보인 아내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지만 말이다. 나는 최대한 실오라기 적게 입고 물을 즐긴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 태반에서 헤엄을 치던 그 따스한 순간을 기억한다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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