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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가을에 띄우는 친전

박계용 / 수필가
박계용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8/10/1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10/11 19:08

요즘은 특사가 파견되고 친서가 전해졌다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친서'라는 낱말은 왠지 좋은 예감이 듭니다. 우리 집에도 폭신한 솜이불과 삼백예순다섯 날 영혼의 양식이 될 귀한 묵상집이 먼 바닷길을 건너 도착했습니다. 정성으로 보낸 우편물이 길을 잃지 않고 당도하는 일은 얼마나 대견스럽고 고마운지요.

목숨을 걸고 험한 여정 끝에 오가던 밀서나 편지의 정다운 사연들은 옛이야기가 되어 갑니다. 전자 메일과 카카오톡에 밀려 특별한 날에나 손편지를 씁니다. 어쩌다 카드 한 장 쓰는 일도 난필을 넘어 악필이기에 몇 번이나 다시 쓰곤 합니다.

뜻하지 않게 살짝 전해 주는 편지는 짧은 글이라도 진심 어린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가장 반가운 소식은 글씨체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편지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너무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다'고 붓글씨로 써 보내신 아버지의 편지를 받던 날도 있었습니다. 이제야 불효막심한 딸자식은 '부모님 전 상사리'를 천상으로 올립니다.

가을비가 내려 달구경을 못 한다는 메시지에 나성의 달님을 보내려 뜰에 나서다 깜짝 놀랐습니다. 베네치아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밤하늘엔 온통 흰 구름이 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이 빨려들어갈 듯 아름다운 창공을 한참 올려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빠르게 흐르던 달님의 푸른 그림자는 하얀 면병으로 내려옵니다. 풀벌레 소리에 밤은 깊어가고 가을 바람꽃 대상화가 달님을 마중합니다.

문득 둘째 언니의 심부름을 가던 어린 날이 떠오릅니다. 동료 교사에게 전해 주라던 보따리와 쪽지를 들고 징검다리를 건너 미루나무가 줄지어 선 냇둑을 걸어갔지요. 궁금증에 풀어 본 쪽지를 접지 못해 그냥 전해 주던 일도 있었습니다. 가정 선생님이었던 넷째 언니와 사택에서 지내던 여고 시절, 교내 작은 동산에 자리한 생활관은 여선생님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친구들 연애편지까지 대필하던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백제문화제가 한창인 가을날에 아프다고 노랗게 단풍 든 미루나무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채에 낯선 청년, 입대를 앞두고 고향을 방문했다는 대학생은 부산에서 온 일가라고 했습니다. 밤새 심한 기침 소리가 들렸는지, 약을 지어다 툇마루에 놓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났습니다.

군사우편 찍힌 편지의 사연은 기억도 없지만, 편지지 사이에 들어 있던 낙엽 한 장은 아직도 선연합니다. 갈잎에 바늘구멍을 내어 새긴 '남아일언중천금'은 가을의 추억입니다. 어떠한 언약도 약속도 없었던 짧은 만남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못내 알 수 없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가을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친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떨어진 낙엽에 담긴 뜻을 꺼내 봅니다. 작디작은 동그란 구멍으로 한 방울씩 새긴 금언처럼 친서의 한 말씀도 중천금이길 마음 모아 합장합니다.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오랜 세월 지나 낙엽 편지에 답신을 씁니다. 가을을 밝히는 추명국(秋明菊) 꽃잎 우표를 붙여 친전(親展)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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