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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뱅크시'의 이유 있는 외침

미술계의 유쾌한 개구쟁이(?) 뱅크시가 또 하나의 시원한 홈런을 날렸다. 영국 출신의 거리 화가 뱅크시는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그래피티로 유명세를 얻은 '얼굴 없는 예술가'다.

이번에는 현대사회의 신(神)인 돈에 대한 신랄한 풍자요, 조롱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것도 권위를 자랑하는 경매장에서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멋지게 한 방 날렸다. 뱅크시는 과거에도 미술 작품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매 현장을 작품을 통해 비꼰 적이 있다. 자신의 작품에 이렇게 써놓은 것이다.

"난 정말 너 같은 멍청이가 이런 쓰레기를 진짜로 살줄은 몰랐어." 아마도 자신의 작품이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리는 이상한(?) 사건을 보고, 뱅크시 스스로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자기 작품이 팔리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번의 풍자는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강렬하다. 소동을 간추리면 이렇다. 지난 10월5일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104만 파운드(약 14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는 2008년 이후 뱅크시의 작품 중 최고가다. '풍선과 소녀'는 지난해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낙찰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경매사의 낙찰봉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림의 캔버스천이 액자 밑으로 스스르 내려오며 세로로 잘려나가면서 파쇄된 것이다. 작가 뱅크시가 벌인 소동일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대단한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튿날, 뱅크시가 "몇 년 전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밝히며,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피카소의 말이라고 알려진 명언을 덧붙이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파괴하려는 욕망도 창조적 욕망에 해당한다."

이 값비싼 장난(?)을 바라보는 일반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아이구, 저 비싼 그림을!" "아니, 무슨 놈의 그림 한 장이 그렇게 비싸?" "그나저나 낙찰 받은 부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등등… 말하자면 돈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소더비는 낙찰자가 파쇄된 뱅크시 그림을 그대로 구입하기로 했고, 특별 전시까지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동 덕에 그림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갔으니, 즐거울 수밖에. "뱅크시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미술계 역사상 희대의 장난이 더해진 작품이니 값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작품 이름도 '쓰레기통 속의 사랑(Love is in the Bin)'으로 바뀌었다.

뱅크시가 신랄하게 비판한 대로,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돈(자본)의 막강한 지배 아래에 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예술성이 아니라 돈과 시장논리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일이 거듭되면서 예술가들이 점점 인기스타 연예인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그런 점에서 뱅크시의 풍자는 충분히 이유 있는 반항이다. "나는 인기스타가 아니다, 순수한 예술가로 존재하고 싶다"는 절실한 외침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미술시장의 배를 불려주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고, 뱅크시는 "영리하게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대미술의 실상이 매우 씁쓸하다.


장소현 / 극작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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