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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축구로 배운 배일 사상

한성호 / 목사
한성호 / 목사 

[LA중앙일보] 발행 2018/10/22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8/10/21 00:13

압록강 얼음이 풀리지도 않은 매섭게 추웠던 2월의 어느 날, 취학 연령이 된 나를 데리고 어머니께서 찾아간 곳은 일본계통의 후다바 공립초등학교였다.

각종 IQ 테스트에 실기까지도 잘 치렀는데 면접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유복자인데다가 '조센징'인 주제에 감히 일본계 학교를 넘보다니? 충분히 예견했을 어머니께서 어찌 그리도 무모하셨는지.

하마터면 낫 놓고 'ㄱ'자도 모를 뻔했던 나를 구해준 것은 어머니께서 집사로 봉직하시던 신의주 제3장로교회 부설 삼일초등학원이었다. 마감시한이 한참 지났는데도 별 복잡한 절차 없이 공부하게 된 걸 보면 역시 우리 어머니의 '빽(?)'이었던 것 같았다.

집에서 불과 1킬로미터의 거리에 있던 교회는 신의주시내 일곱 개 장로교회 중의 하나로 벽돌건물 구조에 2층은 예배당, 아래층은 여섯 개의 교실을 만들어 학교로 사용했는데 주로 영세민 가정의 자녀가 대상이었다.

그 시절 우리를 가르치던 교사들 대부분이 항일 사상이 투철했던 교회장로나 집사들이었는데 여기서 내가 배일사상과 축구를 함께 배우게 될 줄이야. 2학년이 되던 어느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빨간색을 입힌 고무공 하나를 운동장 한복판에 던져 주면서 "터져도 좋으니 마음껏 차라!" 하시는 죽어라 차 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배일사상과 애국정신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셨던 같다. 그 후로도 이런 은밀한 배일사상 교육이 계속되었다. 아무튼 먼 훗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축구협회장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내 축구인생이 일본에 대한 발길질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70년 긴 세월의 빗장이 풀리는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 내게 축구와 배일사상을 함께 가르쳐준 삼일학원 교정이다. 그때 그 선생님과 또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를 훌쩍거리게 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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