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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정주영 회장의 창의력

한국서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이러한 때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왕회장'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다.

충남 서산농장을 기억하는가. 정 회장의 야심 찬 세계적 간척사업. 바다 물살을 막으려면 20만 톤의 돌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만큼의 돌을 수입할 수는 없었다.

이때 정 회장의 직관과 창의력이 발휘됐다. 대형 유조선 폐선을 이용해 바닷물을 막았다. 그래서 여의도의 무려 48배 땅을 만들었다. 이 땅에서 처음에는 소 150마리를 3000마리로 키웠다. 1998년 6월 이 중 1001마리를, 10월에는 500마리를 500대의 트럭에 실어 북한으로 갔다. 당시 정 회장은 83세였다.

정 회장은 17세 때 현재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 고향집에서 부친의 소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한 실향민이었다. 소 한 마리가 1000마리가 돼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1952년 12월 전쟁이 한창일 때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UN묘지(부산)를 방문하려고 했다. 정 회장은 황폐한 묘지 인근을 푸른 잔디밭으로 만들었다. 겨울에 잔디가 있을 리 없었지만, 정 회장은 보리밭을 통째로 옮겨 녹색 물결을 만들었다.

조선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큰 자본이 필요하던 차에 영국 런던에 가서 은행 문을 두드렸다. 실패에 실패. 이때 정 회장의 놀라운 발상이 터져나왔다. 주머니에서 500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며"우리 민족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쭐나게 한 민족이다"이라며 "조선의 기술이 영국보다 역사적으로 300여 년 앞섰다"고 말했다.

결국 금융회사는 정 회장의 독특한 창의력에 설득당해 선박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래서 현대조선은 세계 1위의 초석을 다졌다.

정 회장 앞에서 불가능이란 말을 꺼내면 바로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때도, 지금도 어려운 시절 왕회장의 직관과 창의력이 그립다.


김대환 / 어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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