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된장녀' 유감

밀레니엄 시대, 된장녀라는 말이 생겨났다. 고가의 명품을 갖고 자기의 가치를 그에 의존하는 덜 떨어진 여자를 말한다. 그게 어째서 된장녀가 되는지 정말 모르겠다. 된장은 한국 음식중에서 가장 친근하고 서민적인 음식인 점으로 봐도 그에 상응하지 않는 말이고 그 맛의 깊음과 영양가를 생각해도 그에 전혀 걸맞지 않는 말이다. 왜일까?

우선 된장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자. 재료가 되는 콩은 곡식중 제일 영양가가 많고 단단하다. 사람으로 치면 꽉 찬 실력과 영민함에다 강인함을 겸비했다 하겠다. 여기서부터 속된 된장녀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을 가마솥에서 연속 다섯 시간 정도 푹 무르게 삶아야한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던 잔재주가 다 무슨 소용이랴. 뜨거운 가마솥 세상의 혹독한 시련을 다 이겨내고 인내하는 동안 옹골차던 단단함도 맥을 못추고 결국은 속까지 푹 물러져야 한다. 졸아서 진이 나고 단물이 날 때까지 지속적인 단련을 견뎌내야 한다.

푹 삶아진 콩은 절구에 넣고 찧어 덩어리를 짓고 바짝 말린 뒤에, 항아리에 짚을 켜켜이 깔아 메주를 넣고 뚜껑을 덮어서 띄운다. 밟히고 치이고 문드러져 모양도 색갈도 맛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나의 자아는 사그리 무너지고 속이 시커멓토록 썩어야 한다.



깨끗이 씻은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불리고 덧소금을 뿌려 햇볕에 바랜다. 모두 다 내려놓았지만 꼭 붙들어야 할 것을 위해 왕소금으로 듬뿍 무장한다. 이제는 어설펐던 날들의 냄새나는 추억들, 쓰라린 아픔을 한여름 긴 볕에 바래가면서 차분히 침묵의 시간. 뚜껑을 열어놓고 조용히 곰삭아야 한다. 그래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소증((素症:간절히 먹고싶은 증세) 푸는, 속 정 나는, 노오란 속장이 만들어진다.

된장은 육해공(陸海空) 동식물의 어느 재료를 사용해도, 또 어떤 조리법을 써도 다 잘 어울리는 전천후의 품 넓은 고품격의 음식이다. 가장 싸고 흔한 재료나 비싸고 좋은 재료나간에 된장을 조금 첨가하면 깊은 맛을 더해 세상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요리가 된다.

나는 된장녀야말로 우리 어머님들께나 올려드려야 할 명예로운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성에게는 옴짝 달싹도 못하는 족쇄를 씌웠던 그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억압, 해방과 건국의 혼란한 소용돌이, 6·25 동란의 끔찍한 사선을 넘어오신 분들이다. 질곡의 수난시대, 살신성인의 골짜기와 등성이를 수없이 오르내린 역경. 그 가운데서 지상의 천국인 가정을 지켜내고, 자녀를 등 따습고 배 부르게 길러낸 그 여정이야말로 된장이 만들어지는 고비고비의 발효와 숙성의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어디 그 풋 비린내 나는 날콩같은 여자들에게 붙여줄 이름인가?

해마다 정한 날을 받고 온갖 정성을 들여 쓰다듬고 다독이며 장을 담그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는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여자라면 명품 가방이나 탐하는 된장녀가 아닌, 인격 자체가 품 넓은 고품격을 갖춘 진정 명품, 된장녀가 되는 것을 지양해야 하리라.


민유자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