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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장관의 고장 난 시계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몇 년 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가요의 일부 가사다. 그런데 한국의 장관은 고장이 나도 멈출 줄 모르고 제멋대로 간다며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지난 10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보여준 남측 장관의 태도는 '북한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의 전형'이란 비난이다.

북한 대표 이선권은 남측 장관이 2~3분쯤 늦자 "단장부터 앞장서야지"라며 면박을 줬다. 그러자 남측 장관은 "시계가 고장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선권은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그렇네"라고 재차 핀잔을 줬다. 마치 북한에서 시행되는 '자아비판'의 현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일전에 돌연 탈북민 출신 기자의 취재를 불허한 사실에 정부가 특정 기자 취재를 배제한 것은 언론 자유 침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북측의 심기를 헤아려 고개 숙인 저자세였다고 통일부 출입 49개사 기자들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난달 문 대통령 방북 때 동행한 국방장관은 백두산에 오른 자리에서 김정은의 답방 때 "우리 해병대 1개 연대를 시켜서 한라산 정상에 헬기 패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덕담이라도 이게 국방장관 입에서 나올 말인가. 해병대는 북의 연평도 포격으로 병사를 잃었다. 군은 국가에 충성하는 걸 명예롭게 여긴다. 그러나 김정은을 접대하는데 군대가 동원되는 건 말이 아니다. 왜 해병대 장병을 모욕하나. 공관병 갑질로 박모 대장의 옷을 벗긴 일은 모르는 채 군대를 동원해 6·25 전범에 국가최고의 예우를 갖추는 거라면 갑질이 아니라 국가적 반역행위요 이적행위다. 감정은은 비핵화를 위해 협상 상대이지 우방의 국가원수가 아니란 말이다.

문 대통령은 정전협정 65주년인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문제가 생기면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외교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까지 했다. 덩달아 외교부 장관도 "종전 선언이 우리의 외교적 과제"라고 거들었다.



언젠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라며 김정은이 편지에서 자신에 대한 찬사를 계속해주자 "나는 김정은을 정말 믿는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고 했다. 자신은 거래하는 중이지 사랑 때문에 눈에 콩깍지가 씐 것은 아니라고 둘러쳤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요즘 북과 사랑에 빠진 남측 정권 관료들이 북 앞에서 저자세로 나가는 모습이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흔히 사랑에 눈이 멀면 연인에 대해 특별 기준을 적용하며 '불가피한 것' '특수한 사정' '일리가 있다'고 변명하기에 빠쁘다. 콩깍지가 씐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 북이 핵개발을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의 핵개발에도 일리가 있다고 한 것이 대표적 예다. 특히 한국에서 누가 세습 왕조를 세우려 하면 목숨 바쳐 싸울 사람들이 북한의 김씨 왕조에 대해선 '가족주의적 나라'라고 변호한다. 한국 내 인권엔 기를 쓰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 말살에 대해선 '특수한 사정'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빠지면 사고력도 판단력도 고장 나기 마련인가 보다.

남북대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쌍방이 지켜야 할 원칙과 금도가 있다. 북측의 외교 무례와 과도한 요구는 단호하게 일축할 줄도 알아야 할 터인데 비위나 맞추면서 원칙을 저버리고 북한 앞에 저자세라면 고장 난 시계처럼 그 장관도 고장 난 게 아닌가 싶다.

시계가 고장 나면 시간이 틀려지지만, 장관이 고장 나면 나라가 망가진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육군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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