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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로드킬에 대한 다목적 보고서

얼마 전 손님들과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오랜만에 자연을 찾아 떠난다는 설렘도 잠시,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예의 그 로드킬(Roadkill·길 위에서의 동물의 죽음 또는 그 사체)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 방치된 동물의 사체,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던 그 모습은 시속 80마일의 속도로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지만, 오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나 이미지가 계속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거기에는 그냥 지나쳐 보내서는 안 될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메시지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나에겐 글쓰기이다. 그러나 어떤 글을 쓴단 말인가? 길 위에서 죽어간 덧없는 생명을 영탄하는 시? 갈 곳 모르고 떠돌 영혼을 위한 천도의 제문? 사실과 통계자료에 입각한 보고서? 그것도 아니면 로드킬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 내 마음은 살생의 현장을 방금 목격한 사람처럼 갈팡질팡,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는다. 아무래도 이 글은 위의 어느 목적도 충족시키지 못할 듯싶지만,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경의를 표했다는 의미만은 남으리라.

'이생의 네 삶이 떠나간 자리 / 차마 바로 볼 수 없어 외면한 나의 눈에 / 한여름 무성한 초록색 번진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고단하고 위태로운 삶 /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아픈 사연 간직하였겠으나 / 하필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음이랴 /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차들의 행렬 한 가운데 / 잠시 멈춰 서 고개 한번 숙일 수 없으니 / 하마 너의 시신 수습할 수 있었으리



그러나 너를 기억할게 / 한때 보드라웠을 털, 민첩하게 숲을 뛰어다녔을 너의 튼튼한 다리, 처음으로 어미를 떠날 때 두근거렸을 너의 심장, 너에게도 있었을 찬란한 삶의 순간들을 / 또 기억할게 먼지 날리는 회색빛 도로 한 점 얼룩이 너의 전부가 아니었음을'(길위에서)

로드킬의 순화어는 '동물 찻길 사고'이지만, 로드킬은 사고이면서 사고가 아니다. 오랫동안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갑자기 도로라는 이름으로 뚝뚝 끊어놓았을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생존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가깝게는 로드킬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 멀리 보면, 성장과 개발만을 앞세운 환경파괴가 어떻게 인간에게 돌아왔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명확해 진다.

어떠한 재난이든 그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다양한 형태로 무수한 시그널을 보내기 때문에, "천재(天災)란 없다"고 많은 과학자가 단언한다. 도로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야생동물들 역시, 제동장치 없는 인간의 욕망이 초래할 생태계 파괴와 인류파멸의 소리 없는 경고는 아닐까?

매년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는 로드킬의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로드킬을 목격하거나 가해자가 될 확률은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생태계 파괴의 공범자로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죄를 짓고 있다는 것.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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