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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콜럼버스 동상 철거를 보며

[LA중앙일보] 발행 2018/11/16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11/15 18:24

# 지난 토요일(11월 10일) 오전 8시 30분. LA다운타운 힐스트릿과 그랜드애비뉴 사이 그랜드파크에 있던 콜럼버스 동상이 철거됐다. 1492년 유럽인으로는 처음 신대륙에 상륙했던 바로 그 콜럼버스다. 철거된 동상은 일단 창고로 옮겨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지는 LA수퍼바이저 보드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LA시의회는 지난 해 연방공휴일인 '콜럼버스데이'를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대체하기로 결정했었다. 공식 시행은 내년(2019년)부터다. LA만이 아니다. 콜럼버스데이 철폐 움직임은 미국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콜럼버스데이를 유급 휴일로 인정하는 주는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다. 스페인 여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을 횡단 1492년 10월 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처음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도착한 땅이 인도의 일부라고 믿었다. 그래도 콜럼버스가 개척한 뱃길 덕에 아메리카 대륙은 곧 바로 유럽인들의 새로운 활동무대가 되었다.

미국은 건국 직후부터 콜럼버스 신화를 만들어갔다. 컬럼비아라는 말은 신대륙 미국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1791년 새 수도 이름을 초대 대통령 워싱턴과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 컬럼비아 특별구)'라고 지었다. 1792년 콜럼버스 신대륙 도착 300주년을 맞아 뉴욕에선 처음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1754년 세워진 뉴욕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킹스칼리지도 1784년 컬럼비아로 이름을 바꿨다. 그밖에 거리 건물 공원 등 전국 곳곳에 콜럼버스와 연관된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1937년 콜럼버스데이(10월 둘째 월요일)는 마침내 연방공휴일로까지 지정됐다.

콜럼버스는 미국인의 영웅이 됐다. 그의 모험심 도전정신 개척정신은 미국의 정신으로 포장됐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배웠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해석에 조금씩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양해지고 소수계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유럽 백인의 시각이 아닌 원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콜럼버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에선 근대화의 영웅이지만 우리에겐 침략의 원흉인 것과 같다. 그들은 말한다. "콜럼버스가 미국의 먼 뿌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잔혹한 원주민 학살 문화 파괴 전염병 전파 노예제도 옹호 등 숱한 부작용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 또한 콜럼버스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버젓이 동상을 세우고 해마다 기념한단 말인가."

#. 역사는 이긴 자 힘 쎈 자의 전유물이다. 과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나 해석도 시대 분위기나 권력의 향배에 따라 곧잘 바뀐다. 미국에서 콜럼버스가 그렇듯 한국에도 그런 '문제적 인물'들이 많다.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맥아더. 모두 한국 현대사의 장면장면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해석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들의 동상이 10년 후 100년 후 어떤 자리에 어떻게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흘러간다. 15세기 콜럼버스가 역사라면 21세기 LA 도심의 콜럼버스 동상 또한 역사다. 콜럼버스를 위인으로 기리는 것 이상으로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이 겪은 고통과 괴로움은 물론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덜어내 버리면 남아날 역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섣불리 파괴하는 것은 또 다른 야만이다.

철거된 콜럼버스 동상이 어디에선가라도 다시 자리잡아 이 시대를 증거하는 흔적으로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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