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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왜 한국 공공건물은 천박하고 권위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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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8/12/01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8/11/30 17:39

함인선 /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설계 공모 심사결과에 불복해 심사위원장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10월 정부 세종 신청사 현상공모 심사에서 생긴 일이다. 심사위원장인 건축가 김인철은 "짜고 친 공모"라고 주장한다. 발주처인 행정안전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고층형 청사가 당선되도록 하기 위해 편파적인 심사위원 구성을 했고, 이런 의향을 수시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행복청은 펄쩍 뛴다. 국토부 설계 공모 운영지침을 준수해 위원 구성을 했으며 위원장도 동의한 절차대로 진행했는데도 뒤늦게 생떼를 부린다고 반박했다. 건축 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와 국가건축위원회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요란하나 권위적이고, 호화로우나 천박한 많은 공공 청사가 그간 관(官)의 참견 없이 생겼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거다. 더욱이 용을 형상화했다지만 실제로는 뱀 모양인 기존 세종청사는 먼저 입주한 중앙 부처 공무원들로부터 엄청난 불평불만을 샀다. 이번에 세종 입주를 앞둔 행안부가 기능적인 박스형 고층 청사를 원했을 것이란 추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 공공건축에 대한 진짜 심각한 위협은 불공정성이 아니라 불신이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절차적 공정성 여부가 아니다. 공공건축 공모 프로세스의 곪았던 곳이 터진 것이라 보아야 한다. 청사의 직접 사용자이자 유지관리자인 정부 부처가 원하는 바를 건물에서 얻어야 함은 당연하다. 문제는 얻는 방식이다. 발주자의 요구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공모 지침에 담는 과정을 건축기획이라 한다. 한국에서 이 과정은 대충하고 심사를 통해 발주 의도를 구현하는 것이 관행이다. 품격 높은 공공건축물을 짓는 나라들은 우리와 반대다. 기획단계에서 모든 것을 거르고 작품성을 따지는 심사는 전적으로 건축전문가에게 맡긴다.

프랑스의 공공건축 부처 협의체(MIQ CP)는 공공건축의 사업 타당성 검토, 현상공모 지침서 작성, 공모 진행을 전담한다. 영국은 총리 직속 조직(CABE)이 공공건축의 사업기획과 설계자 선정과정을 지원한다. 미국과 핀란드도 공공건축 조성과정을 전담하는 국가기구가 있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최고의 디자인을 얻을 최적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한국도 2013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과 2014년 국가 공공건축 지원센터 설립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는 갖췄으나 걸음마 수준이다.

여전히 많은 기관은 필요한 사양을 충실히 제시하는 대신 심사 주도권을 행사해 원하는 설계를 얻고자 한다. 관이 주인 노릇한다고 공공건축이 저급해진다는 법은 없다. 라데팡스, 오르세 미술관 등 대형 건축 프로젝트로 프랑스의 1980년대 문화부흥을 이끈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둘로 압축된 설계안 중 최종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루브르를 망친다고 비난받던 유리 피라미드를 고른 것도 그였다. 그 결과 파리는 꼭 가봐야 할 현대 건축물이 많은 세계적 도시가 됐다. 미테랑만큼 예술적 식견에 자신 있다면 나서서 책임지든가 아니면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번처럼 반반씩 섞어놓고 심사한다. 겉보기에 공정성은 갖췄을지 몰라도 매번 그렇고 그런 설계안이 뽑힌다. 이를 아는 응모자들도 좋은 설계안보다는 뽑힐 절충안을 만들고 발주처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살피게 된다. 참신한 젊은 건축가보다 정보력이 뛰어난 대형 설계조직이 유리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5년 기준 공공건축물 계약 건수는 전체 건축물의 25.5%인 1만2630건이고 금액으로는 15.6%인 16조 4000억 원이다. 이렇게 물량이 많은데도 내세울 만한 공공건축물 하나 없는 까닭이다.

3700억원 들여 짓는 공공청사 하나가 명목적 공정성과 익명성에 힘입어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보통 건축물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사후 논란에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공모 전 단계에 썼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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