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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비과학적'인 학문은 없다

'과학을 맹신한다'는 문장은 모순어법(oxymoron)이라는 주장이 있다. 과학은 근거의 유무에 의한 진위판단을 하기 때문에 맹신할 수 없는 체계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을 맹신한다고 말할 때 그 본래의 의미는, 근거에 의한 과학적 방법론을 맹신한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범위'를 맹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을 맹신한다'는 말이 모순어법이라는 주장은 그 문장을 오독한 것이다.

흔히 '과학적'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그리고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과학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 고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학(科學)은 사이언스(science)를 번역한 말이다. 후자는 라틴어 스키엔티아/쉬엔치아(scientia)에서 온 말인데 스키엔티아는 고대 그리스어 에피스테메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스키엔티아는 어떤 '체계적 지식'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현대적 의미의 사이언스와는 다르다. 중세와 근대에 사용된 라틴어 스키엔티아 나투랄리스(scientia naturalis), 필로소피아 나투랄리스(philosophia naturalis), 그리고 피시카(physica) 같은 말들은 거의 동의어였고 '자연(철)학'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예컨대 13세기 스콜라 철학자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1부 물음 1의 두번 째 문항은 "성스러운 학문이 스키엔티아인가"라고 질문한다. 모든 스키엔티아는 자명한 원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신앙으로부터 출발하는 성스러운 학문은 스키엔티아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 아퀴나스는 성스러운 학문은 스키엔티아 데이(scientia Dei)에 의해서 확립된 원리로부터 진행하기 때문에 스키엔티아라고 반론한다.

중세 이후 19세기까지도 스키엔티아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사이언스는 1833년 캠브리지의 철학자 휴웰이, 아트(art)를 하는 사람을 아티스트(artist)라고 부르듯이,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 대신에 사이언티스트(scientist)라고 부르자고 주창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뉴턴에 의해 확립된 실험과 관측을 중시하는 경험철학을 기존의 논리적 사변적인 철학과 구분하고자 나온 단어가 바로 사이언스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이후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 경험은 일상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실험 및 관측을 포함하는 것이다. 반면 '과학적'이라는 단어는(단지 '가설연역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근거에 기반한 지식 체계라는 스키엔티아에서 유래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철학적' 또는 '학문적'이라는 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경험과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이든 근거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또한 특별히 근거 그 자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철학의 인식론에 속하는 영역이다. 진리추구는 (예술과 실용/실천학문을 제외한) 모든 학문의 특징이며 경험과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진리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 아니 모든 학문에 대해서 우리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승규 / LA미션칼리지 강사·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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