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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북가주에서 생각한 포카혼타스

김수영 / 시인
김수영 / 시인 

[LA중앙일보] 발행 2018/12/06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12/05 18:11

수년 만에 북가주 새크라멘토 딸네 가족을 만나러 아들 며느리와 함께 방문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딸은 우리가 온다고 칠면조와 불고기를 굽고 진수성찬을 차려 얼마나 맛있게 온 가족이 먹었는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식사 후에 찾아간 곳이 크로커 예술 박물관(Crocker Art Museum)이었다. 1885년에 자선가였던 저지 E.B. 크로커가 공동 파트너십을 갖고 설립했다. 그는 중앙 태평양철도사업에 법적 자문을 해 주면서 많은 부를 쌓았다. 1869~1871년에 유럽에 여행 가서 많은 화가들의 그림과 도자기, 공예품 등을 사들였고 가주 및 전 미국에 사는 화가들에게서도 그림을 사들였다.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 뉴기니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들인 예술작품 그림과 도자기 공예품 등 규모가 방대해서 제대로 관람하려면 온종일 소요 되는 박물관이다.

건물 3층에는 아시아 특히 중국, 일본, 인도 등의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고 한국 고려 시대 도자기들도 한 섹션에 진열되어 있어서 매우 기뻤다.

그리고 특히 미국 인디언 원주민들의 도자기와 조각품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감회가 깊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1620년 미국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영국 청교도들을 도와 옥수수 등 농작 재배를 도와준 인디언들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관람했다. 인디언들이 그렇게 영국 청교도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배경에는 1595년에 태어난 막강한 포하탄 인디언 부족의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맨 처음 도착한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1607년에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도착했을 때 포카혼타스 남동생이 식민지 대장이었던 존 스미스를 납치해 살해하려고 할 때 포카혼타스가 극적으로 대장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되었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을 납치해 가면 포카혼타스는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원주민들을 구조해 데려오곤 했다. 그녀는 원주민과 식민지 개척자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애쓴 개척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친선대사 같은 여인이었다. 결국 존 스미스와 결혼까지 했으나 그가 몸에 상처를 입고 영국에 돌아가 소식이 끊겨 죽은 줄 알았다.

나중에 잉글랜드-포하탄 전쟁이 일어났을 때 포카혼타스가 영국 상선의 선장에게 납치되어 배 안에 갇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인디언 원주민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첫 사례가 되었으며 존 롤프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영국에 가게 되었다. 런던에서 앤 왕비도 알현하고 공주처럼 대접을 받았다. 그녀는 초기 미국의 식민지 개척 역사에 중요한 인물로 주목받았다.

추수감사절을 만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도록 식민지 개척 초기에 큰 힘이 되어 준 포카혼타스를 한 번 더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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