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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50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간호사가 조용히 물었다. "다음 주에 스케줄이 잡힌 환자가 전신마취 없는 시술을 거부하는데 마취과에 연락할까요?" 이 환자가 받을 자궁질부 근접방사선 치료는 간단하고 빨리 끝난다. 보통 부위 감각을 무디게 하는 젤을 바르고 커다란 템폰이라고 생각하면 될 기기를 넣고, 그 기기 안에 있는 미세한 통로를 통해서 방사선을 쪼여준다.

70세의 이 환자는 평생 내진을 거부해 왔다. '성적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 했던 것이다. 정규적인 내진도 거부해 왔었기 때문에 자궁체부암 진단이 늦어진 것, 암이 많이 전이되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규 내진을 위해서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는 없다.

마취과에 연락을 마친 간호사가 돌아와서 오늘 시술이 잡혀있는 환자는 신경안정제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 여인 또한 아프고 지워지지 않는 과거사가 있었다. 여인은 함께 있던 남자 수련의를 물리쳐 줄 것을 요구했다. "선생님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수련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치료 잘 받으십시오" 하고 물러나 주었다.

2017년 영화계의 거장 하비 와인슈타인이 갑의 위치에서 을의 여성들에게 강요했던 성희롱 과거사가 보도된 후, 미국과 한국에는 '미투'라는 새로운 복합어가 생겼다. 피해자들은 사회의 편견과 이에 따른 거친 시선을 겪어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과감히 사건을 터트려 왔다. 많은 요소들이 복잡히 엉켜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케이스가 법정으로까지 가도 법의 낡은 해석, 남성 우월주의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다시 돌을 던지고 있는 형편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회는 피해자를 기만한다. 그 좋은 예로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과정에서 성희롱 과거사를 폭로했던 팔로알토대학 크리스틴 포드 교수는 캐버노의 인준 후 후폭풍으로 또 다시 피해자가 되었다. 언젠가 '남편을 미투 가해자로 만들지 말자'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글에 섹스의 만족을 아내들이 채워 주지 못 해 남편들이 '미투' 가해자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을 쓴 여인 조차도 가해자의 잘못은 여자가 유인한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섹스를 회피하는 그 남편의 아내가 숨은 피해자인지 누가 알랴?

미국 성폭행 자료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여성 5명 중 한 명, 남성 71명 중 한 명은 간강을 당한다고 한다. 가해자들의 50% 이상은 친지 또는 친척들이다. 이와는 다른 양상의 범죄를 CNN, BBC 방송이 인권감시 단체의 보고를 빌려 이달 초에 보도한 바 있다. 북한에서는 경찰, 교도관, 고위 공산당원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성폭행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행 예방은 예방이라 치더라도,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아니 거의 평생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는 것을 나의 환자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아픔은 그들에게는 치욕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불찰이 아니었는데도 이로 인해 자신을 좋아 할 수 없었던 여인들이다.

내적 치료를 위해서 사건의 해석을 달리 해 보고, 상처가 아물 수 있게 자신들을 사랑해 줄 수는 없을까. 사건이 있은 후 50번 이상이나 왔다가 멀어져 간, 감사 없는 추수감사절이었을 것이다. 내년에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기적이 있어 그 능력에 대한 고마움으로 채워지는 특별한 감사의 날이 될 수 있을런지, 나에게서 번뇌는 떠나지 않는다.


모니카 류 / 암 방사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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