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대열 목사 목회칼럼: 가난과 애통

사람들은 2018년도 마지막 남은 시간을 축제와 감사와 아쉬움 속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축제와 파티와 감사로 보내는 연말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언급하고 싶다. 만감이 교차하는 계절에 특별히 성도에게 필요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자인가? 그러한 마음 때문에 애통하고 있는가?
어떤 형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는지”를 물었다.
형제는 답변을 회피하며 자기가 지금까지 읽었던 불교에 관한 지식과 철학 등을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 중에는 행실이 뒤따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서 실망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가 지금까지 책을 읽고 정립한 진정한 삶은 이 땅에서 나름대로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며 착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자기의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마음이 교만한 것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행위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계획 하셨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인간에게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이다. 인간은 끝까지 자기의 선행으로 스스로를 구원코자 하는 심령의 부요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에게 오히려 심령의 가난함을 요구하셨다.
일반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것은 자기의 자존감을 상실하여 자기 자신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의 가난은 하나님 앞에서 선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능력하며 초라한 존재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심령의 가난은 자기의 능력과 업적과 선행이 구원에 관한 한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의지하는 마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지하는 즉,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주신다. 이 천국을 소유한 자는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히 천국을 소유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소유한 자의 성품을 언급하시는데 “애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가난”, “애통”.... 이 두 단어는 다 현세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것이고 사람들이 선호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단어들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게 된다. 심령이 가난하여 천국을 소유한 자가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하나님 앞에선 자기의 모습으로 인하여 그는 애통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그가 비록 천국을 소유한 자이지만 여전히 죄의 존재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애통에는 두가지 영역이 있다.
하나는 개인적 죄에 대한 슬픔이다. 하나님 앞에서 드러난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애통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스스로 판단한다. 그리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애타하지만 스스로 용서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죄로 인하여 삶이 숨이 막히고 괴롭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재판관이 되다 보니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판을 진행하게 되고 그의 마음은 점점 무디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자기의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양심적인 호소를 억누를 뿐이다.
그러나 천국을 소유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의로움 앞에서 우리의 죄는 발가벗듯이 드러나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담당 목사님의 간증을 잊을 수가 없다. 이분은 자기가 심각한 죄를 짓게 되면 틀림없이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속에서 발가벗고 다니는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꿈속에서 얼마나 부끄러운지 어쩔지 몰라 당황하다가 꿈을 깨곤 한다고 하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죄의 형벌과 세력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아직 죄의 유혹과 죄의 존재로부터 자유하지는 않은 존재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죄가 드러남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성도를 정의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했다. 파스칼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진정한 의인이 있다.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진정한 죄인이 있다.
우리는 자기의 죄가 드러남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다.
애통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은 세상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것이다. 요즈음 전세계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에 관한 기대감이 높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가 단순히 남쪽과 북쪽의 결의로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열방들이 오직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다른 나라의 평화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방이라는 말이 단순히 자기들의 이익이 보장된 경우에만 사용되고 자기들이 손해를 보면 언제든지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만 의롭다거나 악하다고 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자기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때로는 불공정하거나 잔인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본질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여 애통하는 자는 세상 속에 난무한 죄를 보게 된다: 정직의 상실, 불의, 폭력, 싸구려의식(Cheapness), 이기심, 무관심, 탐욕 등등. 이 모든 죄악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죄로 인하여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죄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죄를 바라보며 성도는 슬퍼하고 애통한다. 성도는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을 필요가 있음을 바라보고 저들을 불쌍히 여기게 된다.
연말의 파티와 축제와 감사의 향연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이 없이 기아에 시달리고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애통하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주위의 사람들로 인하여 애통하는가? 이와 같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죄로 인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애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약속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위로”는 헬라어로 “파라칼레오”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에서 “파라클레토스”가 나왔는데 이 말은 “보혜사”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죄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인하여 애통하는 자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선포하시고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다. 영어의 comfort는 무너진 요새를 더욱 강하게 세우는 의미가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고 아파하지만 성령님은 comforter가 되셔서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힘과 위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에게 완전한 죄 사함의 선포와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무너진 마음을 세우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애통하지 않는 자는 참다운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의 죄와 이기심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할 것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