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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태어났나, 인생2막은 그 의미를 찾을 기회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12/06 16:01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22)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에 전시된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일본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임종이 다가오자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 터라며 아쉬워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2월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여름 몹시 더울 때 이 더위가 언제 가려나 했는데 가을을 지나 벌써 한해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도 안팎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아쉽다. 앞으로 몇 번이나 12월을 맞이하게 될까. 친구에게 얼마나 살 것으로 기대하냐고 물었더니 15년 정도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이 79세임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답이다.

70대 중반의 선배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도 15년으로 답했다. 20년은 길고 10년은 너무 짧은 것 같다며 15년 정도면 좋겠다고 한다. 15년 후라면 90세인데 평균 수명을 훨씬 넘는 나이다. 하긴 의학이 발달해 요즘은 90세 넘어 사는 사람도 많으니 그의 희망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80대라면 몇 년 더 살 것을 기원할까. 일본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유럽 인상파에 영향을 준 유명 화가로 89세까지 장수했다. 그가 85세가 되었을 때 70세 이전에 그린 그림은 그림도 아니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깎아내렸다. 임종이 다가오자 그는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 터라며 아쉬워했다.


누구나 지나온 생 아쉬워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한국 나이로 치면 99세이다. 일전에 김 교수가 매체에 기고한 글에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조문규 기자

90세가 넘은 사람은 어떨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한국 나이로 99세로 내년이면 100세가 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김 교수와 안병욱 교수는 당시 대학생들의 인생 멘토였다. 요즘도 여전히 좋은 글을 써 후학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전에 김 교수가 매체에 기고한 글에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세인이 보았을 때는 훌륭한 삶을 사신 분임에도 여느 사람처럼 어떤 기원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125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하니 건강관리만 잘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이가 젊든 늙든 인간이라면 여전히 지나온 생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

50대 중반의 A 씨는 시청의 시민과장으로 공직생활을 하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 얼마 후면 재직 30년을 맞는다. 어느 날 갑자기 속이 거북해 병원을 찾았더니 위암 말기란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그의 남은 생을 6개월 정도로 추정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지난 생을 반추한다. 아내를 일찍 사별하고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지만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 가정과 직장생활을 하며 늘 바쁘게 지냈다. 돌이켜보니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술과 도박장을 찾아 방황하지만 별다른 위안을 받지 못한다.

우연히 길에서 옛날 여직원을 만났다. 인형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는 그에게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를 통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뭔가를 이루는 데서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으로 돌아간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미결서류 속에서 주민들의 숙원사항 하나를 찾아낸다. 비가 오면 침수되는 지역에 어린이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건의였다. 하지만 자신과 동료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일이다. 그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고개를 돌리는 동료들을 설득해 마침내 공원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운명한다.


말기 암 진단받고 원하는 삶 살다간 공무원
1952년작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이키루' 포스터.

이 남자의 이야기는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이키루’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공무원 사회의 문화는 비슷한 것 같다. 그는 전반생을 별 의미 없이 살았지만 후반생 특히 마지막 몇 달 동안은 그가 원하는 삶을 살다 갔다.

인생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날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날, 또 하나는 자신이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아는 날. 그러나 많은 사람이 두 번째 날의 의미를 모른 체 세상을 뜬다고 한다. 인생 2막은 그 두 번째 날의 의미를 찾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좀 더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것은 이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 번잡함을 피해 나도 두 번째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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