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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까는 농구스타 페어팩스 박인규씨 온몸으로 이민살이

 70∼80년대부터 선수로, 감독으로 한국 농구계를 풍미했던 왕년의 농구스타 박인규(사진, 52).

 그가 화려했던 과거를 과감히 접고 지난해 8월 워싱턴에 정착, 초보 이민살이를 시작했다. 국가대표로 뉴델리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화려한 선수시절과 지난 90년 감독으로 데뷔한 뒤에도 기아·삼성생명 등 막강한 팀들을 지휘하며 탁월한 성적을 올린 그였지만 현재의 직업은 건축업 분야중 타일 기술자다. 이민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무작정 뛰어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화려했던 날들은 옛 일이죠. 농구만 할줄 알았지 아무런 기술이 없거든요. 우선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마루 일을 시작했어요”

 마루 일이 얼마간 손에 익을 무렵 건축경기가 죽으면서 다른 직장을 찾아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청소일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내 그만뒀다. 이후 그의 직장은 타일 공사. 이제는 제법 손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대학팀이나 프로팀에서 한번 더 감독을 할 기회가 있었지요. 그러던중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 내게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내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농구를 접어야 한다는 게 끔찍했지요. 결심 한 뒤에는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노동일임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는 그. 그러나 핏줄속에 흐르는 농구인의 열정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근질거리는 몸을 풀기 위해 인근 체육관 등을 들락거렸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아예 워싱턴 지역의 한인 꿈나무 청소년들을 모아 키우보자는 소박한 꿈도 갖게됐다. “어렸을때부터 운동할 경우 신체와 근육이 골고루 발달돼요. 특히 농구는 혼자서 또는 둘이나 셋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지요. 단체경기다보니 희생과 양보, 리더십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운동이기도 하고요.”

 미국 생활을 ‘소금’과 ‘간장’이 빠진 음식에 비유한 그지만 대신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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