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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 지난 1일 패서디나 인근 한 공동묘지에서 피득(彼得)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외국인을 기리는 기념동판이 제막됐다. 주인공은 19세기 말 조선을 찾았던 러시아 출신 유대인 선교사 알렉산더 피터스(1871~1958). 구약성경 시편 일부를 처음 한글로 번역했고 나중엔 구약성서 전체 번역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거의 잊혀 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동판 제막은 지난 해 풀러신학교에 연구교수로 와 있던 연세대 박준서 명예교수가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그의 묘역을 어렵사리 찾아내고 한국 교회에 기념사업을 호소해 이뤄진 첫 결실이었다.

#. 기독교가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은 다방면에서 크고 깊었다. 그 중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한글 대중화에 끼친 역할이다.

알다시피 한글, 즉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세계 어느 문자와도 견줄 수 없는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글이었지만 또한 그 이유 때문에 조선 내내 제대로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 공식 문서나 양반 사대부들의 소통 문자는 늘 한자였고, 한글은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으로 속되게 불리며 상민이나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해 있었다. 창제 450년이 지난 1894년 갑오개혁 때에야 비로소 한글은 나라 글이라는 뜻의 국문(國文) 호칭을 얻고 한자와 함께 조정의 공식문자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식자층에선 여전히 한문을 선호했다.

한글이 본격 빛을 보기 시작한 데는 19세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양반 사대부가 아닌 백성들의 말과 글에 주목하며 한글부터 배웠다. 우리말 단어를 채록하고 한글 사전과 문법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도 선교사들이었다. 초기 한글 성경은 선교사들의 그런 노력의 산물이었다.



최초의 한글 성경은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1842~1915) 등이 1882년 만주에서 발간한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다. 이후 로스 선교사 팀은 신약을 낱권으로 잇따라 번역했고 1887년엔 신약 전체를 완역한 '예수성교젼서'를 펴냈다. 구약 번역은 앞서 말한 피터스 선교사가 1898년 펴낸 '시편촬요'가 처음이었다. 촬요(撮要)란 요점만 뽑아 만든 소책자라는 뜻으로 '시편촬요'는 시편 150편 중 62편만 골라 엮은 책이다.

신·구약을 합친 최초의 한글 성경 완역본인 '성경젼서'는 1911년에 나왔다. 한국 교회는 지난 2011년 한글 성경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펼친 바 있다. '성경젼서'의 발행은 한국 기독교뿐 아니라 우리 문화사 측면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성경젼서'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그때까지 간행된 어떤 한글 책보다 많은 내용과 어휘가 담겼다. 오랜 한문 숭상의 전통에 억눌려 미처 알지 못했던 한글의 가치를 일깨웠다는 점도 소득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큰 공적은 이를 통해 본격적인 한글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 경기도 용인에 가면 '선교사 로스 기념관'이 있다. 최초 신약성경 한글 번역자의 공적을 기리는 곳이다. 그에 비하면 구약성경의 최초 번역자이자 46년간이나 한국에 머물며 한글 성경 번역에 이바지한 피터스 선교사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가 너무 무심했다는 것이 박준서 교수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지난 달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받은 은혜를 잊지않고 감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한국 교회는 피터스 목사가 이룬 공적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가 신채호 선생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고 했다. 성경 번역이라고는 해도 우리 민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한 원로교수의 노고에 힘입어 이제부터라도 피터스라는 사람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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