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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록그룹 '퀸'의 도전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LA중앙일보] 발행 2018/12/07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18/12/06 20:07

주위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이어지는 추억 이야기. 젊은 시절 퀸의 앨범을 빠짐없이 사 모았다든지 프레디 머큐리의 열혈 팬이었다든지. 요즘 중년들의 대화는 퀸이 늘 화제의 중심이다. 추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연쇄작용이다. 퀸과 함께 나의 젊었던 시절이 함께 떠오르니 말이다.

퀸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기장에서 열창하는 '위 아 더 챔피언'은 말할 것도 없고, CF나 배경음악으로 워낙 자주 나오는 음악이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퀸의 노래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의 노래가 뮤직비디오의 원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다. 그것도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서. 요즘 세대가 당시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자면 음향이나 화질이 유치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단한 시도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퀸과 함께 자란 세대라고 해서 퀸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근육질의 남성 로커들이 여성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은 아무리 예술적 자유분방함의 표현이었다고 해도 어쩐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의상은 언제 봐도 불편하다. 그것이 번쩍거리는 날개옷이든, 서커스단이나 레슬링 선수를 연상시키는 옷이든. 그렇다고 벗은 모습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니. 유별나게 과장된 무대 매너는 때로 노래가 주는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음악사를 가르치고 있어서 그럴까. 노래를 부르는 영상보다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졌던 상황이 더 흥미롭다. 라디오 방송에서 틀어줄 수 있는 음악은 길어야 3분이라는 것이 당시의 불문율. 그것에 맞추어 음악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도전할 것인가. 시류를 따를 것인가 새로운 형식을 창조할 것인가. 퀸은 갇히기보다는 문을 열고 나가기 원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장애를 넘어서는 도전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베토벤이 기악만으로 구성되는 교향곡에 합창을 넣는 파격적인 시도를 할 때 어찌 고민이나 불안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믿었고 합창 교향곡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왕이나 제후들의 후원을 받는 대신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주어야 했던 음악가들. 이런 굴레를 벗고자 모차르트는 독립적인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 자유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결국 과로와 가난에 지쳐 죽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영원하다.

훌륭한 작품들은 예술가들이 인생에서 맞닥뜨렸던 고뇌와 결단의 소산이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해서 당대에 부와 명예를 누리는 예술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진정한 예술가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도 이런저런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말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시켜야 할지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고, 대학 입시에서 학교의 명성이 먼저인지 전공이 우선인지도 고민이다. 직장을 계속 다닐지 다른 길을 찾을지도 선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생 방정식은 늘 답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과감하게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짧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은 더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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