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0.0°

2019.05.23(Thu)

[뉴스 속 뉴스] 울다가 웃으면

[LA중앙일보] 발행 2018/12/1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12/10 18:53

1327년 겨울,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5명의 수도사가 며칠 사이 잇달아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체들은 손가락과 혀가 검게 변한 채였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수도사는, 범인이 수도원 도서관에서 이단으로 분류된 금서에 후배 수도사들이 접근 못 하도록 막아온 늙고 눈먼 수도사임을 밝혀낸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논리학과 신학·철학·기호학이 무르녹아 있어 현대 고전으로 칭송받지만, 간단히 보면 이러한 추리소설이다. 그렇다면 그 책, 수도사를 죽일 정도로 위험한 금서의 내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 선생님이 화를 내며 훈육하는 살벌한 자리. 괜히 웃음이 나온다. "참아야지" 하지만 '피식 피식' 웃음 폭발은 도미노처럼 퍼진다. 웃지 말아야 할 장소나 시간에, 웃음이 터져나오면 미칠 노릇이다. 그런 웃음은 강도까지 세고, 전파력마저 강하다. 웃음을 참기 위해 별짓을 다 해도 결코 쉽지 않다. 그걸 눈치챈 주변인도 금세 고개를 숙이고 어깨는 들썩인다. 그런 상황 중 가장 난감한 장소는 장례식장이다.

지난 5일 조지 HW 부시 장례식에서 아들 부시는 추도사에서 "아버지는 골프 쇼트 게임과 춤 실력이 형편없었다"며 엄숙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더니, "이 남자는 채소, 특히 브로콜리를 못 먹었는데, 이 유전적인 결함은 우리에게 그대로 대물림됐다"고 했다.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술 더 떴다. "아버지는 90대 들어 오랜 친구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병실에 몰래 들여온 보드카를 홀짝거리며 마셨다"고 일러바치기에 이른다. 다시 웃음.

수도원 연쇄 살인사건의 동기인 금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다. (실제로 이 책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事實)은 없다)

늙은 장님 수도사는 이 책이 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페이지 곳곳에 독약을 묻혀놨다. 숨진 수도사들은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겨 읽다가 독살된 것이다. 행각이 탄로나자 늙은 수도사는 독이 묻은 책장을 뜯어 먹는다. 책 내용은 이랬다. '웃음은 예술이며, 지식인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 하지만, 노 수도사에게 웃음은 불경죄였다. 예수는 결코 웃지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우리 정서에 장례식 추도사에서 웃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추도사를 한 사람도 없고, 듣고 웃어준 사람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울먹임이고 엄숙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처럼 무미건조한 표정과 태도도 안 된다. 일관되게 슬퍼야 하고 간혹 눈물지어야 한다.

장례식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하지만 서구(미국)에서는 장례식에서 고인을 '마지막으로 살려내기'도 한다. 추도사는 인생이 그랬듯 슬픔 이외에도 기쁨과 유머, 엄숙함, 욕망과 에피소드가 함께 어우러진다. 추도객들은 '울다가 웃으면서' 고인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짧은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세기보다 빈도다. 울고 웃는 등의 원초적 감정은 자주 표현할수록 행복함을 준다. 나이가 들면 울음에는 공감력이 는다. 하지만, 웃음은 쉽지 않다. 웃지도 웃기지도 못한다.

웃음의 핵심 중 하나는 뜻밖에 자기 희생이다. 유머는 자기를 객관시하고, 웃음의 자료로 기꺼이 제공하려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터져나온다. 장미의 이름에서 노 수도사는 이걸 경계한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용기없는 식자((識者)의 고지식한 마음을 여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울다가 웃는 일이 잦을수록,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다.

늙고 눈먼 수도사는 웃지 않는다.

관련기사 뉴스 속 뉴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

핫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