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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꿈의 궁전'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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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08/08/2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8/27 19:58

이종호/편집위원

여행은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 알지 못했던 사연을 더듬고 새로운 향기를 찾는 일은 늘 즐겁다. 누군가의 자취가 서린 곳이라면 그 사람의 삶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가서 그 편린이나마 더듬어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주말 중부 캘리포니아의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을 다녀왔다. 한인들도 즐겨 찾는 그 곳은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가 살았던 궁궐같은 저택이다.

1919년부터 수십 년에 걸쳐 지어진 그곳은 127에이커의 땅에 방만 165개라고 한다. 중세 스페인풍의 건물 내부 또한 유럽 각지에서 수집해 온 국보급 골동품과 미술품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허스트는 그 곳에서 황제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렸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3000피트 산 위로는 매일 아침 경비행기로 신문이 배달되어 왔다. 순금 장식의 실내외 수영장을 꾸며 놓고 뉴욕의 정치인과 할리우드 명사들을 초대하여 연일 파티를 즐겼다.

허스트는 24살 때 아버지로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수십 개의 신문 잡지 통신사를 거느린 굴지의 미디어 왕국으로 키워 냈다. 야심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1904년에는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했다. 그렇지만 그 꿈만은 이루지 못했다.

언론 재벌로 위세를 떨친 허스트였지만 정작 언론인으로서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19세기 말 또 하나의 신문 신화를 일궜던 조셉 퓰리처와 함께 센세이셔널리즘과 기자 빼돌리기 싸움을 되풀이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를 언론역사가들은 '황색 저널리즘'의 무자비한 실천자로 기록한다.

나는 인간이 만든 모든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조화와 공존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어울림 속에서 삶의 질감이 누려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모든 건축물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허스트 캐슬은 아름답되 아름답지 않다. 그 곳은 세상과는 차단된 단절의 공간이다.

허스트에겐 13살부터 품었던 꿈의 궁전이라지만 내겐 생명의 숨쉬기가 멈춘 거대한 박제품이다. 허스트가 죽자 아들이 1958년 그곳을 주정부에 기증함으로써 아버지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그나마 고맙다.

가이드는 말한다. 이 양탄자는 10만 달러가 넘고 저 도자기는 하나가 수십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 평생 수입을 쪼개어 은행 빚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 속에 찬바람이 인다.

톱니처럼 일해서 살아가는 빠듯한 생애가 가진 자의 허세 앞에 한없이 비루하고 초라해진다.

가이드는 또 말한다. 꿈은 소중한 것이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끝내 그 꿈은 이루어 진다 허스트의 생애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평생의 수고를 다 바쳐도 캐슬의 조그만 탁자 하나 살 수 없는 앙상한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궁전을 보는 마음은 그래서 설레면서도 서글프다.

미국에서의 여행은 액자 속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광활한 자연에 압도되고 현란한 수사에 눈은 빼앗기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 땅의 사연들이 이민자의 살아온 내력과는 맥락이 닿아 있지 않아서일까. 미국의 여행은 그래서 늘 감동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캐슬의 산록을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세상 속으로와 세상 밖으로의 차이가 이런 걸까. 그렇다면 내 삶의 꿈은 무엇인가. 아직도 내게 꿈을 향한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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