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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겨울사막은 도도하지 않았다.

모래벌판에 부딪혀 흩어지는 빛의 잔영들은 들끓지 않았다. 수수 만년 '기억의 주름'이 잡힌 산맥과 산맥 사이, 죽음의 계곡을 휘도는 바람은 요동치며 울부짖지 않았다. 가만한 바람은 앞선 바람의 흔적들이 새겨진 모래언덕을, 어루만지듯 쓸고 넘어 아스라한 사막의 지평 속으로 잦아들었다.

눈 가는 곳마다, 숨죽인 겨울사막의 행색이 사막이 지닌 본연의 적막과 황량함을 되레 깊게 한다.

이 불모의 사막도 그 속살을 한 겹 들추어보면, 있을 수밖에 없어 할 수 없이 있는 것들이지만. 있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긴 긴 시간의 풍화 속에서 갖은 신산과 고투를 견디며 발현되고 진화된, 그들의 강력한 생명에의 의지와 내재한 에너지는 경이롭다.

살아 있는 생명들은, 턱없는 결핍 속에서도 생장에 필요한 자양을 얻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포식자의 일용할 양식이 되지 않고 혈통보존과 종족번식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 찰나도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와 같아서 사막은 아주 빈, 절멸과 허무의 자리가 아니라, 비었으되 역동적 생명력으로 가득한 침묵의 자리이다. '텅 빈 충만'이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역설적 은유라 해도 되겠다.

그리하여 이 척박함 속에 더불어 사는, 여린 풀꽃과 앙증맞은 새, 경계의 눈이 바쁜 도마뱀과 다람쥐 등 뭇 생명과, 이글대는 태양, 모래 구릉과 가뭇한 산, 메마른 바람의 내음과 그 바람에 몸 맡긴 회전 초, 타는 저녁놀, 쏟아지는 은하, 허허함과 적막까지도, 한 생각 돌리니 모두가 갸륵하고 아름답다.

한 생각 돌리면 지옥도 극락이 된다. 그럼에도, 어두운 면만 골라보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기에는, 딱 한번인 이승의 생이 억울하다.

어느 때, 깊게 깎인 절벽의 끝머리에서, 잠든 어린 딸을 등에 업은 여인이 초점 잃은 눈으로 사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맞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여인의 초췌한 얼굴을 자꾸만 휘감는다. 평생 겪을 고통의 총량을 한꺼번에 치른 듯 처연하다. 남루한 삶을 마무리 하려는 비관적인 의지마저 엿보인다. 그때, 부스스 잠깬 아기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거 뭐야?" 엄마의 눈이 아기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자,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도 보지 못했던 선홍빛 노을이 마구 타오르고 있었다.

"아!" 비명 같은 외마디 탄성이, 말라붙은 여인의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회한이 서린 혼잣말이 나직이 이어졌다.

"아가, 세상엔 저리 아름다운 것도 있는데… 엄마는 여태 어두운 것만 보며 살아왔구나."

불타는 노을로 온통 불콰해진 죽음의 계곡에, 생기로운 바람이 분다.

그래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musagusa@naver.com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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