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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벗어 버려야 할 남루한 옷들

김용현 / 언론인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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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8/12/19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8/12/18 20:24

해가 바뀔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한번쯤 집안 정리를 하고 싶어진다.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것이라며 별 의미 없이 끌고 다니는 옛날 물건들, 쌀 때 사두자며 마구 욕심내서 샀다가 결국은 처박아 두고 있는 살림도구들, 신발장 안에 잘 보관은 하고 있지만 별로 신어본 기억이 없는 오래된 신발들….

그 중에서도 옷이 제일 그렇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1년 내내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는 옷은 보관이 잘 되어 있을지 몰라도 이미 자기 옷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미국에서 옷값이 얼마나 싼데, 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한번 입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그 옷에만 집착하는 것도 썩 좋은 습관은 아니다. 남루한 옷 속에 남루한 생각도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으라'는 가르침이다. 법정스님은 '사람은 때로 낡은 생각, 낡은 습관에서 훌훌 털어내고 나와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놓쳤던 나의 삶, 나의 빛깔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일러 준다. 종교에서 말하는 새 사람, 새 옷에는 특정한 의미가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 자기 습관을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 교육으로, 훈련으로, 신앙으로 사람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법정스님은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것이 아니다'고 했지만 혹 그런 걱정을 해서는 아닐까.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 분단체제에서 평화체제로 가고 있는데 70여 년 동안이나 반공주의와 안보상업주의에 찌든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서슴없이 좌경이니 주사파니 빨갱이니 하며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함부로 남을 공격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녀온 자기 생각을 바꾸는 날 '자기'도 없어지고 '자기가 살던 집'도 없어진다는 강박관념에서 '자기' 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안간힘으로 보인다.

그들은 입만 열면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 같으냐'거나 '북한이 적화통일의 꿈을 접을 것 같으냐'라는 등의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보수가 지키고자 했던 길이 고작 반공주의와 안보상업주의였는데 그 대상인 주적이 사라지려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해 그런 염려를 하고 있다면 참으로 안쓰러운 노릇이다. 안보의 개념도 '싸우는 안보'에서 '협력하는 안보'로 전환되고 있는 시대에 과거의 안보를 내세워 전쟁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건 보수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남과 북이 살아왔듯이 진보도 보수가 있을 때 존재 가치가 있어 왔는데, 건전한 보수가 없다면 진보는 자칫 방향을 잃을 수가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진보 정책에 혼선이 있은 것은 거기에서 연유한다. 모두가 다시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보수는 무슨 가치를 지킬 것이며 진보는 무엇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보다는 이미 적응돼 있는 생각과 행동을 할 때 더 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편안함에서 벗어나 오래된 생각을 버리려는 결단과 함께 새로운 생각을 수용하려는 진취력과 상상력이 없이는 개인도 국가도 발전 할 수가 없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누더기 같은 남루한 옷과 남루한 생각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한다. 벗어 버리되 온전히 벗어버려야만 온전히 다른 새 것으로 채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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