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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이 골목 저 골목 고향 이야기

때로는 운동화, 고무신, 맨발로 밤낮 뛰고 걸어도 동네 개는 나를 알아줘 짖지도 않던 그 동네는 가로등도 전등도 없었다.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별빛, 여름엔 무더위에 비가 죽죽 내려주기도 했고, 바람 없는 겨울 초가지붕에 눈이 쌓일 때 강아지 검둥이는 나와 같이 앞 들판을 뛰어놀기를 좋아했다.

때론 생리적인 배설 욕구를 못 참아 돌담 옆에 부끄럼 없이 실례를 하였던 그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난 11월 두리번두리번 할 기회가 있었다. 경상북도 문경군 산양면 진정리 내 고향이다.

그런데 더 이상 골목이 아니었다. 사립문이 대문으로 바뀌고, 집집마다 담이 쳐져 있고, 대문 밖에는 보안경비회사 ADT 표지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고, 불이 환희 켜진 골목에는 도요타, 현대, 벤츠가 한가히 주차하고 있었다. 명절 때는 이웃끼리 주차 문제로 설왕설래한단다.

할배, 할매, 아지매, 아제, 형님, 누나, 동생이 어우러져 살던 고향은 물 건너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큰 형님께서 들려주시는 우리 토담집 이야기는 나에게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하여 주셨다. 앞으로 10년이면 그 토담집은 100년이 되어 갈 것이란다.

위로 세 형님(아들 5형 제 중 나는 막네)은 그 집에서 태어나셨고 어머니는 일꾼들을 시켜 새끼줄에 숯과 고추를 엮어 달라고 하셨을 것이다.

집안 종손 되는 조카가 그 토담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는 고독한 자존심 때문에 수리하는 비용이 번쩍이는 양옥집을 짓는 것보다 더 들었단다.

방 하나는 온돌방으로 장작을 때고 다른 방은 원형을 보존하되 전기 방바닥으로 자손들을 배려하여 약간 다듬은 격이다. 우리는 결혼 후 단칸방에서 지내던 때를 생각하며 토담 온돌방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 닭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는 순간 할아버지와 아버님이 제사를 모시고 나면 닭이 울어야 제시간에 맞추어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며 제관들에게 시간을 엄히 지켜야 함을 교훈하시고 이어 하얀 쌀밥(제삿밥)을 먹던 때가 기억났다.

그런데 조상님께, 나는 이름을 베드로(Peter)라 바꾸었으니, 이름으로는 나를 모르실 것이 아닌가 죄송함을 아뢰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는데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예수님도 부인하고, 조상들의 음덕도 잊고 살았구나.

"음수사원(飮水思源) 굴정지인(掘井之人)이라는 글이 있다. '목말라 물을 마실 때는 그 우물의 근원을 생각하며, 그 우물을 판 사람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 대로 우리도 가끔은 닭 우는 소리도 듣고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언젠가는 손주들 데리고 고향 토담집에 가 한 이불 속에서 잠도 자며 베드로가 듣던 닭 우는 소리와 지금도 그 동네에서 우는 닭 우는 소리는 어떻게 다르며 이 골목, 저 골목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고 싶다. 그 일이 가능할까.

변성수·연방 및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변성수 / 연방 및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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